영국 리버풀은 어떤 모습일까? 리버풀이라는 도시 중앙에는 커다란 성당이 있다. 축구의 도시답게 성당의 남쪽으로는 축구경기장이 자리잡는다. 그 외에는 시민이 이용하는 편의시설들이 조금 있고 나머지는 목초지로, 친환경도시의 모습을 한 섬이다. 이것이 진짜 리버풀의 모습일까? 리버풀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서울 시민이 그린 그림이다. 시민 자신이 살고 싶은 상상의 도시다.
도시는 이렇게 이미지화 되어 있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시의 모습과 그 이면의 진실을 알 수 없다. 인터넷으로 쉽게 취합할 수 있는 정보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필터링된 하나의 이미지다. 도시를 지배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이미지화하고 그것으로 돈을 번다. 이런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다.
“도시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죠.”
리슨투더시티는 박은선(기획), 권수정(도시건축), 양으뜸(디자인), 김준호(독립영화감독)로 구성된 대안 예술가 그룹이다. 건축, 예술과 관련된 계간지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작업이다. 재개발, 도시문제 등을 다루는 매체가 없는 현실에서 작으나마 대안이 되고자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시회도 여러 번 기획했다. 그 첫 번째 작업에서 ‘리버풀-서울 전시’를 기획했다. 리버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서울 시민이 상상하여 그리는 작업, 서울에 한 번도 안 와본 리버풀 시민이 상상하여 그리는 작업을 교차 전시했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리버풀 시민과 서울 시민 모두 자신이 그 도시에 대해 갖고 있는 적은 정보를 중심으로 결국에는 자신이 살고 싶은 상상의 도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는 라깡의 ‘거울단계’를 실험적으로 보여주었다. ‘거울단계’란, 거울을 보기 전 유아는 자신의 몸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못하다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고 나서야 육체가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눈으로 확인해야 실체를 알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리슨투더시티’는 ‘서울 투어’를 한다. 서울의 ‘이상한 곳’을 방문하여 오감각으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상한 곳’은 서울을 개발한다는 논리로 훼손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의 현장이다. 황학동, 인왕산, 광장시장 등을 코스별로 둘러보는데 그 중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녹조투어’다. 청계천 복원을 하면서 훼손된 문화재를 둘러보고 청계천의 녹조가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한다. 운이 좋으면 녹조청소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자연 하천으로서의 ‘복원’이 아니라 인공 구조물로서의 ‘신축’을 한 청계천의 진실을 시각으로, 후각으로 느껴본다.
여기에는 동대문디자인파크를 둘러보는 일정도 포함된다. 동대문운동장은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철거 당시에 논란이 많았다.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철거했는데 그 밑에 또다른 문화유산이 있었다. 조선시대 군사훈련과 치안을 담당했던 하도감 터가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그 터를 서울시는 깨끗이 밀어버렸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하도감 터였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보존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이런 경우, 문화재 터 위에 기둥을 세워 2층부터 이어지는 구조물을 만든다. 문화재도 보존하고 새로운 시설물도 만들 수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성급하게 추진했는지 모르겠다. 서울시장 임기 내에 가시적인 사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꼬집은 박은선 씨는 “도시의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스페이스 모래’ 4대강의 아름다운 모래밭을 위하여
‘리슨투더시티’는 ‘불교환경연대’와 함께 지난 1월부터 기증받은 콘테이너에 대안 전시 공간을 마련하여 ‘스페이스 모래’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동의 용이성을 기반으로 두리반, 마리 등 투쟁 현장에서 4대강 관련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9월 28일부터는 조계사 앞마당에서 바자회와 함께 사진가 노순택, 시인 신경림, 정용택 등의 시를 묶은 시화전이 열린다. 이 바자회에 참여한 백련화(법명)조계종포교사에 의하면 “바자회 물품을 가져다 주는 사람도, 교환하거나 사가는 사람도 많다. 지나가다가 차 한 잔 하고 가면서 4대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한다. 4대강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박씨는 말한다. “서울의 청계천 문화제를 훼손한 사람들이 결국은 4대강을 파헤치는 사람들이다. 청계천이 결국에는 오염천이 되었듯 4대강도 더렵혀질 것이다. 당장이라도 그만 둬야 한다. 구미 구간을 제외하고는 원래부터 1급수였던 강을 어떻게 더 깨끗하게 정비하겠다는 건가? 흐르게만 놔두면 되는 일이다.”
‘리슨투더시티’는 앞으로도 ‘이상한 일들’에 귀 기울일 생각이다. 박씨는 “강정마을 구럼비도 2009년까지는 ‘절대보존지역’이었는데 지금은 해군기지 건설로 부숴버렸다. 그러려면 ‘절대’라는 말은 왜 붙이나? ‘임시보존지역’이라든지, ‘약간보존지역’이라고 할 것이지. 언어의 오염 문제다. 이런 문제를 묵과한 시민사회로 그 영향력은 번져올 것이다. 문화재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존의 노력이 없는 한 우리는 뿌리가 없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사는 위태로운 삶들일 뿐”이라 일축했다. ‘리슨투더시티’에게 반정권 투쟁 자체는 중요치 않다. 문제를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 양심, 침묵하는 전문가집단에 대한 경고를 가감없이 하는, 용기있는 실천이 제일 목표다.
명동 마리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투쟁할 때 용역회사 사장이 “너희는 시위가 취미냐?”라고 묻더란다. 그래서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합리적인 사고로 인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에서 우리를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