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함 해야지 지회장이라카든데... 말이 씨가 되어버렸어”
전국화학섬유노동조합 한국메디칼사푸라이지회 김혜숙 지회장이 수줍게 웃는다.
언론에서 취재 와서 난생 처음 인터뷰라는 걸 해보니
“진짜 파업을 하긴 했는가 보네” 한다.
1990년 12월 한국메디칼사푸라이지회 창립 후 21년 만의 파업이었다.
하루 20분이 이제껏 무급
서울 구로공단에 위치한 한국메디칼사푸라이는 일회용 주사기를 만드는 회사다. 병원에서 쓰이는 링겔이나 일반 주사기를 만든다. 작업장은 햇볕이 보이거나 먼지가 들어가면 안 된다. 모든 것이 차단된 무균상태를 유지한다.
기계의 힘을 빌리긴 하지만 대부분은 사람의 손으로 주사기를 조립하고 진공포장을 한다. 그야말로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이다. 임금도 박하고 일하는 환경도 열악해 IMF이전에는 아무도 일하러 오지 않았단다. IMF가 터진 후 젊은 주부들이 많이 들어와서 일을 하게 됐다고. 열악한 노동조건은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부터 조금씩 좋아졌다고 한다.
주5일제가 시행된 이후 대부분의 회사들은 연차가 8일에서 15일로 늘었지만 유급휴가였던 월차는 폐지되고 생리휴가 역시 무급처리 됐다. 그런데 한국메디칼사푸라이지회에선 단협 상 주 5일제 이전 휴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주부들이 다니기는 좋아요. 조퇴 자유롭지 휴가도 많지. 주5일제 시행 이전 휴가 그대로니까. 그런데 2007년부터 사측에서 주5일제 이후 바뀐 휴가제로 바꾸자는 단협 개악안을 세 차례나 들고 나온 거야. 그동안 억눌려 있던 분위기도 있었고, ‘올해는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김혜숙 지회장)
점심시간은 40분. 이외에 오전, 오후에 10분씩 쉬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쉬는 시간은 무급이다. 그런데 쉬는 시간 10분은 무균처리해서 작업장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들로 시간이 꽉 찬다. “1회용 주사기를 만드니까 위생과정이 철저해요. 그래서 과정도 길죠. 1차 탈의실에서 남색 츄리닝으로 옷을 갈아입어요. 그걸로 하루 종일 활동을 해요. 작업장에 들어갈 때는 2차 탈의실에서 한 번 더 옷을 갈아입어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 있죠? 우리도 그걸 입어요. 오물 안 묻는 옷으로 갈아입고, 신발 신고, 장화 신고, 마스크 쓰고 모자 위에 또 모자 뒤집어써요. 먼지도 다 털어내야 하고걖? 쉬는 시간이 아니라 근무시간의 연속이었죠” (김 지회장)
입사 5년 차 박정옥 조합원이 말을 거든다. “점심시간도 말이 40분이죠. 2차 탈의실에서 옷 갈아 입는 시간 10분씩 제하면 실제로 밥 먹는 시간은 20분이에요. 빨리빨리 먹어야 하니까 점심시간이 짧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밥 먹고 잠깐 여유부릴 틈도 없어요.”
21년 만의 파업, 잃은 건 없고 오로지 얻은 것뿐
지난 5월 27일 시작된 임단협은 12차례 실무교섭과 4차례 본교섭까지 진행됐으나 타결되지 않았다. 8월 22일 협상이 최종 결렬되자 노동조합은 준법투쟁에 들어갔다.
출근투쟁이 시작되면 조합원들은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아침밥 하고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선 회사에 8시 전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헐레벌떡 달려온 조합원들은 회사 앞마당에 모여 농성을 시작했다. 집회를 갖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조합원들이 앞에 나가 장기자랑을 하기도 했다. 8시 20분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꼼짝하지 않았다.
8시 반이면 이미 모두 작업장에 들어가 일을 시작할 시간이었지만 이날부터는 “근무시작 종이 울리기 전까지 작업장에 아무도 못 들어간다”고 노동조합이 가로막았다. 8시 반이 되어서야 2차 탈의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2차 탈의를 마친 후 손 씻고 8명씩 먼지 터는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작업시간은 지연됐다.
20분 파업이 얼마나 대단하냐 하겠지만 1회용 주사기를 만드는 사측 입장에선 1분이 아쉽다. 한국메디칼사푸라이에서 만든 1회용 주사기와 링겔 등은 국내 시장 및 일본에 수출된다. 비록 납품 단가가 낮긴 하지만 1회용이기 때문에 물량의 회전속도가 빠르다. 하기에 메디칼사푸라이 공장에서 만든 제품뿐 아니라 다른 업체에서 만든 주사기를 들여와 진공포장만 하는 경우도 있다. 1분 1초가 돈이다.
9월 7일 밤 11시까지 진행된 지노위 3차 협상이 결렬되자 노조집행부는 8일부터 회사 앞마당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시작은 2인용 텐트였다. 간부들은 추석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천막을 돌아가며 지켰다.
추석이 끝난 다음 주인 19일부터 노동조합은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점심시간 40분에 20분을 더해 1시간동안 점심시간을 갖겠다고 사측에 통보했다. 150여 조합원들이 하나로 뭉쳐 모두 지도부의 의견에 따랐다. 그리고 그동안 오전, 오후 10분씩의 휴식시간은 실제 휴식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유급처리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말에 조합원 모두가 동의했다.
“4일 동안 하루 20분씩 파업투쟁을 했네요. 23일엔 4시간 파업을 결정하고 조합원 모두를 데리고 쌍용자동차 파업투쟁에 연대하는 계획을 세웠죠. 그런데 22일 돌연 사측이 교섭을 하자고 했어요.” (김 지회장)
조합원들의 점심시간은 1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쉬지 못하던 휴식시간 20분은 유급처리 되었다. 고등학생 자녀에 대한 입학금 지원제도도 생겼다. 월급은 6만원 가량 올랐고 정년이 1년 연장됐다.
꾸준한 지역연대, 되로 주고 말로 받네
20여년만의 파업인데 걱정이 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김 지회장은 “처음엔 잘해낼 수 있을까 불안 했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기본 바탕은 있었다. 김 지회장이 임기를 시작한 2006년부터 교섭 때마다 아침 8시부터 출근투쟁을 해온 것. 그때마다 조합원들이 (일찍 나오기도 하고 귀찮아서) 힘들다고 해도 지켜왔었던 저력이 이번 파업에 빛을 발했다.
김 지회장은 “야근근무자를 제외한 90%이상 조합원이 아침 출근투쟁에 다 참여했다”며 “이번에도 큰 힘든 점 없이 투쟁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박 조합원 역시 “올해 안에 해결 안 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함도 있었지만 한 번 하는 거 재밌게 하자는 마음이었다”면서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이번에는 한번 해결해 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승리의 비결을 전했다. 그 마음은 가정주부인 조합원들이 릴레이로 농성장을 철야교대한 것에서도 나타났다.
한국메디칼사푸라이지회는 단결의 기운이 넘친다. 누구 하나 빠지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도 어림없다. 한 명이 나오지 않으면 그날 바로 “왜 안나왔냐”며 들들 볶인다. 사측 관리자가 몇몇 조합원들을 데리고 술 사주면서 친한 척을 하면 바로 말이 나온다. 아줌마 기운에 사측도 기운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김 지회장이 참여하는 지역연대투쟁에도 조합원들이 함께 간다. “(연대투쟁에)저 혼자 갈 때도 있고 때론 여러 사람을 필요로 할 때도 있잖아요. 우리는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가요. 조합원들이 입사순서대로 순번을 정했어. ‘오늘은 몇 번부터 몇 번까지 나랑 같이 간다’해요. 누구는 가고 누구는 안가고 하면 안 되잖아요. 그럼 말이 나오거든. 그래서 순서대로 가자고 했죠.”
그의 연대투쟁은 지역에 유명하다. 서울남부지구협의회 소속 사업장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언제나 그가 있다. 같이 구호도 외치고 밥도 나른다. 민주노총 서울남부지구협의회 박효선 조직부장은 한국메디칼사푸라이지회를 ‘지역연대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재작년에 타결됐던 기륭전자분회에서도 집중집회를 할 때마다 (지회)조합원들하고 간부들이 참석하고 투쟁사업장들 재정이 어려울 때마다 후원주점 티켓을 사주시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지역에서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투쟁에도 결합했었죠. 이번 (지회)파업 때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동지들이 많이 오셨어요.”
실제 한국메디칼사푸라이지회의 이틀 파업동안 민주노총 서울남부지구협의회 사업장들이 대거 참여했다. 김 지회장은 “파업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 몰랐다며 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연락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노동자로서 떳떳함 생겼다
김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파업 후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주부들이 집안일에 많이 묶여 있기도 하고 나서는 걸 싫어해서 책임감 있는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았다고 한다. 정년을 앞두고 있는 6년차 지회장인 그가 새로운 지회장을 세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그런데 파업 후 모두가 자신감을 얻었고 다음 지회장 선거에 나갈 든든한 후임을 만들기도 했단다.
“파업투쟁 이후에 간부 회의에서 평가를 했어요. 조합원들이 파업하기 전 출근투쟁 할 때는 아침에 나오기가 싫었는데 도리어 파업을 한다 하니 아침에 더 빨리 나오고 싶었다는 거예요. 지회장도 서로 안하려고 해서 ‘노동조합 없어지는 거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다음 지회장 할 사람도 세우고, 파업을 함으로써 우리 노동조합이 잘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같아 좋아요.”(웃음)
수석부지회장이 아침에 풍물을 배우자고 해서 파업 전에 한 번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출근투쟁 때도 써먹고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동지들과 함께 파업출정식에서 분위기도 살렸단다. 평소 일상 활동이 없었던 지회에 풍물을 고정적으로 배우는 5~6명이 생겼다. “이제는 정년퇴직을 하고 가도 걱정이 없다”는 김 지회장의 말에 긴 겨울을 이기고 새롭게 싹 틔울 준비를 하는 씨앗이 담겨있는 듯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