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서 '불복종 감자'를

[54호]

[공감] 4대강 사업의 마지막 저항지, 팔당 두물머리 지킴이들
글 사진 윤성희 기자 | vpmiyu@hanmail.net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1.11.07 14:42:20

강을 따라 단풍이 든, 두물머리로 가는 길을 죽 걷다 보면 집들 사이로 난 작은 샛길이 보인다. 그리로 들어가면 비닐하우스들 사이로 구불구불 난 길이 따라 나온다. '자진철거를 가장한 강제철거 중'이라는 손글씨가 유기농산물 인증 팻말 위에 붙어 있다. 그러다 갑자기 제법 널찍한 빈터가 나온다. 얼마 전까진 딸기밭이었던 곳이다. 이 땅을 20여 년 동안 일구며 유기농 딸기를 키웠던 농민은 올해 하우스를 철거하고 떠났다. 비를 머금은 흙은 돌조각 하나 없이 부드러워 질척하게 발에 감겼다. 사람은 떠났어도 수십 년의 손길은 땅에 이렇게 배어 있었다. 

팔당 유기농민들이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맞서 싸운 지도 2년이 넘었다.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측량 두 번과 강제철거 계고장을 네 번 받으면서도 주변을 맴돌며 언제 들어올지 모를 공사 장비를 막으면서 농사를 지었다. 
 
그들이 거둔 결실은 작물만이 아니다. 지난 2월에 경기도 양평군을 상대로 낸 '하천부지점용허가 취소처분 철회' 소송에 이기면서 "자전거도로와 위락 체육시설을 만드는 것이 두물머리 유기농단지를 밀어내고 농민들의 점용허가를 시급히 철회할 만큼 공익적으로 우월하지 않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입증했다. 4대강 관련 소송 중 정부 측이 패소한 첫 사례였다. 또 학계 전문가들과 대안연구단을 구성해 생태적, 시민 친화적 지역발전 방안을 담은 '상생을 위한 두물머리 대안 모델'을 수립했다.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 총회는 팔당 유기농을 지지하는 특별선언을 채택했다. 
 
그 과정엔 상처도 많았다. 연행에 기소, 수백만 원의 벌금 폭탄까지 맞았다. 하천부지점용허가 관련 소송이 진행 중임에도 경기도는 공탁을 걸었다. 계속되는 긴장과 싸움의 피로감은 상처를 안으로 곪게 했다. 대응방법에 관한 입장이 갈리고 합의를 받아들여 떠나는 농가가 하나 둘 늘었다. 20년 유기농업 공동체가 그렇게 무너졌다. 지금은 46가구 중 4가구만 남았다. 김병인씨, 최요왕씨, 임인환씨, 서규섭씨다. 
 
최씨와 임씨에게 농사를 가르친 선배는 팔당 토박이이자 팔당 유기농 1세대였다. 그도 결국 올해 초 이곳을 떠났다. 떠난 이들을 책망할 것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냥, 비어버린 밭들이 황량하다.
"2년 동안 싸우면서 다들 힘들었죠. 힘든 거보다는 농사를 중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커서 이주한 거예요. 아쉬워요. 되게.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니까… 떠난다고 해서 안 볼 사람들도 아니고…"(방춘배 팔당공대위 사무국장)
함께 농사지으며 서로 의지했던 이들은 이제 서로가 아프다. 
 
  
두물머리에서 나가라고? '4대강 포기 배추'나 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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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학생들이 그린 팔당 유기농지 지도와 농민들의 캐리커처




래도 농민 넷은 여전히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는다. 최씨와 임씨는 같은 대학에서, 김 씨는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서씨는 생협에서 유기농업의 꿈을 품고 온 귀농 9~10년차 농민들이다. 다른 농민들에 비하면 긴 시간은 아니다. 그래도 이들이 원한 두 번째 인생을 열어준 것은 두물머리였다. 

 

이들의 곁을 유영훈 팔당공대위 위원장과 방춘배 사무국장이 지키고 있다. 방 사무국장은 2009년 7월 1일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팔당공대위의 싸움을 함께 했다. 사실 그에게도 꿈이 있다. 이곳에 귀농해 밀과 쌀 등 주작물류를 키우는 것이다. 꿈이 그로 하여금 희망의 근거를 찾게 한다.
 
"떠난 분들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찾아와서 같이 농사도 짓고 하게 된 분들도 많아요."
 
그의 말대로 떠난 이들의 빈자리를 학생, 시민, 예술가, 종교인 등이 채워주고 있다. 4대강저지천주교연대는 600일이 넘도록 매일 두물머리에서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 유기농 보존을 요구하는 생명평화 미사'를 계속 집전하고 있다. 3차 계고장이 날아온 후부터는 조해붕 신부는 미사 장소 근처의 컨테이너 가건물로 거처를 옮겼다. 길 하나만 막아도 고립되는 두물머리의 지형상 공권력이 순식간에 들이닥쳐 강제철거를 할 위험을 우려해서다. 
 
'팔당은 에코토피아', '록빠 작목반' 등 농업, 생태, 평화행동 등에 관심 있는 개인, 단체나 예술가들도 꾸준히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떠나간 농민들의 빈 밭에 '불복종 감자'와 '4대강 포기 배추'를 함께 심었다. "이주한 농민들의 땅에 농사를 지으면 불법경작"이라는 경기도 측에 대한 저항이었다. 올해 가을엔 '4대강 뭥미(米)를 판매하며 농민들의 후원금을 마련하고 있다. 

팔당에서 놀자, 그리고 살자... "강변가요제에 이어 강변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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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20여 개의 밴드들이 노래로 농민을 잃은 빈 밭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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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물머리 강변가요제에서 '너를 사랑해'를 부르는 가수 한동준씨.


지난 10월 15일엔 팔당에 연대하는 젊은 청년들이 기획하고 23개 인디 뮤지션이 참여한 '두물머리 강변가요제'가 열렸다. 두물머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는 현장임을 알려냄과 동시에 강제철거 위협에 맞서 많은 이들이 모여 신나게 놀고 연대하자는 취지였다.
 
빈터가 된 딸기밭과 비닐하우스 두 곳에 공연 무대와 먹을거리 장터, 강정마을 부스와 벼룩시장 등이 차려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폭우가 내렸다. 행사는 지연되고 전기마저 끊기기 일쑤였지만 100여 명이 찾아왔다. 한숨보다 "완전 기억에 남겠다"는 웃음 섞인 이야기들이 비닐하우스 안을 채웠다. 비옷에 무릎담요와 목도리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앉은 정김소리(23)씨와 노주연(26)씨도 그 중 하나였다.
 
"오늘 와서 보니까 생각만 하고 너무 떨어져 있었구나, 너무 내 앞길만 걱정하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좀 더 자주 와야겠단 생각이 들고, 또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노주연)
 
스태프로 참여한 김가온(20대)씨는 "비가 오니까 먹을 게 잘 팔리네요"라며 웃었다. 2년 전 농촌활동으로 팔당에 온 그는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싸움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이곳에 마음을 주었다. 그는 "강제철거에 맞서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사람들에게 알려내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면서도 김병인씨는 어김 없이 자신의 비닐하우스에 들렀다. 호박과 아욱이 풍성했다. 자동차 정비노동자였던 그는 자동차 부품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싫었다. 아직 쓸 만한데도 교체해주고 돈을 더 받는 상술도 성미에 안 맞았다. 우연히 한 손님이 그에게 맞는 것을 찾아주었다. 생명살림 농법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하던 그 방식이더라고요. 농약 대신 음식물 찌꺼기 발효시켜서 쓰고, 풀 엑기스 내서 벌레 죽이고… 너무 좋잖아요. 돈보다는 내가 재배하면서도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걸 생산하고 싶었어요. 농사짓기 전엔 나 아닌 다른 걸 돌아볼 겨를이 없었어요. 나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거였는데, 지금은 같이 살아야겠다… 주변 사람이랑, 생물이랑… 그렇게 바뀌더라고요."
 
끝까지 이곳에 남은 이유는 "여기가 농사짓기 좋은 땅이어서"란다. 단순한 이유의 속내는 깊다. 식량자급률이 20%밖에 안 되는 나라가 비옥한 농지를 없애 버리는 것, 그게 결국 가난한 이들의 배를 곯린다는 것이 그의 성미에 안 맞았다.
 

"자연-사람의 조화 보여준 것 의미"... 5일엔 두물머리 영화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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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욱을 거두는 김병인씨.


"봄눈별이 무슨 밴드는 꼭 보라고 했는데… 여자 둘이 하는… 이름이 무키 뭐랬더라…?"
 
서규섭씨가 비닐하우스 공연장에 들어왔다. 그는 늘 바빴다. 두물머리 대안 모델을 만들고, 토론회에 가고, 재판도 받고, 농사도 지어야 했다. 수백만 원의 벌금도 여전하다. 
 
"힘들었던 거요? 교수님들이 다 바빠서 시간 맞추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웃음) 같이 해주신 분들한테 고맙죠. 정부에 찍히면 연구 발주도 못 받는다고 피하는 교수님들도 있었어요."
 
이들이 애써 만든 상생 모델을 경기도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서씨는 실망하지 않는다.
 
"자연, 사람이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측면에서 의미가 있죠. 싸움 이후에도 우리가 만든 이런 대안은 어디서든 필요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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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당공대위
가요제 기획에 참여한 봄눈별(닉네임, 종합예술가)씨는 지난 1년의 절반을 농민들과 함께 보냈다. 함께 일상을 보내고 글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면서 그들을 '가만히 좋아하게' 되었다. 날씨는 나쁘지만 행사를 통해 두물머리 상황이 좀 더 알려져서 좋고, 조촐해도 뜨거운 공연장 분위기가 좋단다. 무엇보다 늘 긴장상태에 있는 농민 형님들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들떠하던 게 제일 좋았다는 그는 농민들의 매력과 상처를 함께 짚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4대강 투쟁이라는 상황에만 관심 갖지 마시고, 사라지는 농촌문화에 대해서도, 그게 사라지는 이유에도 안타까워해 주면 좋겠어요. 4대강 사업 때문에 전국 농촌에서 3만 명이 쫓겨나고 있잖아요. 자본이 농업마저 장악하려는 거 아닌지 싶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쫓겨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그래서 더 오래 남고 지울 수 없는 상처들에 더 따뜻하게 관심 가져줬음 좋겠어요. 팔당은 그래도 농촌문화가 살아있고, 형님들이 젊어서 농촌의 희망을 볼 수 있는 곳이에요. 경직돼 있지 않아서 예술 하면서 농사짓기를 실천할 수도 있고. 또 유기농이라는 대안의 상징이잖아요.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고 지켜줬음 좋겠어요."
 

두물머리 지킴이들은 악천후도 방해하지 못할 더 재미있는 한 판을 예고하고 있다. 오는 5일 토요일엔 '두물머리 강변영화제-빤타스틱 농사꾼'을 진행한다. (공식홈페이지:http://riverun.org/diff) <어이그 저 귓것>, <트럭 농장>(국제환경영화경선에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 이곳 농민들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팔당 사람들>을 상영한다. 농민들이 직접 두물머리 탐방을 안내하는 '두물머리 도슨트', 디너쇼, 댄스파티 등을 열 계획이다.    


11월, 긴장과 희망 사이에 놓인 농민들

다가오는 9일에는 하천부지점용허가 취소 철회 소송 2심 결과가 나온다. 2심에는 정부가 더 압력을 가하지 않겠느냐고 농민들은 우려한다. 농민이 지면 강제집행이 들이닥칠 것이다. 5차 계고장에 따라 그 전에 강제집행이 강행될 수도 있다. 유기농대회가 끝난 직후 경기도가 보낸 다섯 번째 계고장의 기한은 10월 31일까지였다.
 
10월 하순경 경기도가 두물머리에 대한 강제철거를 보류한다는 기사가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팔당공대위측은 "경기도측에 확인한 결과, 사업을 맡고 있는 경기도 건설본부는 '철거계획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답변했다. 경기도가 사업을 반납하거나 국토부가 사업권 환수조치를 내리는 등 어떠한 공식적인 결정이 날 때까지는 강제철거 계획이 진행중이라고 봐야 한다. 경기도가 안 하면 국토부가 직접 나설 수도 있다"고 밝혔다. 사업 완료 시점은 12월 말로 예정돼 있다. 11월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팔당공대위는 내다보고 있다. 

올해 겨울에도, 빼앗긴 들에도 이들의 딸기가 자랄까. 답은 콘크리트보다 딸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달렸다. 일단 영화제에 놀러가서 땅과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면 어떨까. '사대강 뭥미(쌀)' 주문(http://8dang.jinbo.net/rice)과 후원도 농민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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