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농민은 왜 다시 포도나무를 심을까

[54호]

한칠레 FTA로 점쳐보는 한미 FTA 후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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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7 14:43:16

경북 상주에서 농사짓는 박동준(43)씨는 올 여름 탄저병에 걸린 비닐하우스 속 고추들을 보면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20년이 넘는 농사 경력 중 최악의 작황이었다. 산지에서 600g, 1근에 7천원 하던 고추가 2만원까지 올랐다. 언론들은 “김장 물가에 고추가 ‘고춧가루’ 뿌려”라며 ‘고추파동’을 보도했다. 고춧값이 올랐다고 농민들이 웃었을까? 박씨는 “3천  포기를 심으면 1000근 이상 나와야 하는데 올해는 200근도 안 됐다”며 울상을 지었다. 가격이 3배 오르는 대신 수확량은 1/5도 안 돼 전체 수입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셈이다.

7년 전, 현재 고추묘목이 있는 비닐하우스는 탐스러운 포도송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밭에서만 포도농사를 짓던 박씨가 남의 비닐하우스를 임대해 하우스 농사까지 시작한 지 2년 정도 된 상황이었다. 당시 정부는 2004년 4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비닐하우스 포도농사의 폐원을 장려했다. 칠레 포도의 주수확철이 우리나라와 정반대인 겨울, 봄이어서 농가들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이제 막 하우스 농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던 그로서는 큰 낭패였다. 그래도 ‘칠레산 싼 포도가 들어오면 이나마도 못 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박씨는 제법 줄기가 굵어가던 1400평(4628m2) 비닐하우스 속 포도나무들을 다 뽑아버렸다.

정부가 준 지원금은 그 면적에서 농사지으면 3년도 안 돼 벌어들일 정도의 액수였다. “그래도 갑자기 목돈이 생기니까 이게 어딘가, 싶더라고요. 그걸로 농사빚도 좀 갚고...”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지난 7년간 같은 자리에 생강, 고구마, 수박, 오이, 그리고 올해 고추까지 다양한 작물들을 심어봤지만 모두가 신통치 않았다. 포도농사 때 수입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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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희


한칠레 FTA 앞두고 포도나무 다 뽑아


박씨는 내년 봄에 비닐하우스에 다시 포도묘목을 심을까 고민중이라고 했다. 하우스 포도농사를 다시 할 정도면 예상보다 한칠레 FTA로 인한 농업의 피해가 적은 건가. 한국무역협회 송송이 수석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한칠레 FTA 7년의 평가’에 따르면, 지난 7년 동안 “한국의 대칠레 수출은 연평균 33.9% 증가한 반면 수입은 연평균 26.8%가 증가했고, 우려했던 농림축산물 수입 증가 기여율은 8.8%로 낮은 수준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정부 역시 “포도와 키위 재배면적이 늘고 가격도 10% 이상 상승해 농가 피해가 적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2007년에 보고한 ‘한칠레 FTA, 3년의 진실’에 따르면, “한칠레 FTA 체결 이후 국내 시설포도산업과 양돈산업부문 피해만 최소 173억원에서 최대 427억원에 달하고, 1만 가구 이상의 폐업으로 공급이 줄어들어 일시적 가격상승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폐업농가들의 직접 손실과 작목 전환으로 인한 타작물의 2차 피해를 고려한다면 피해는 그 이상”이라고 했다.

또한 “협정에 따라 관세가 점진적으로 철폐되고 있어 그 피해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칠레산 돼지고기 수입관세는 2004년 22.5%에서 2011년 6.3%로, 포도는 45%에서 12.4%로 서서히 떨어져 왔고 몇 년 후 0%에 이른다. 그동안 칠레산 포도는 446.7%, 키위 등 기타 과일은 321.9%, 돼지고기는 269.8% 수입이 증가했다.

박씨는 자신이 다시 시설포도농사를 고민하는 게 바로 “한칠레 FTA 학습효과”라고 표현했다. “한칠레 FTA 이후 포도는 물론 바나나, 오렌지, 키위 등이 사시사철 시장에 들어와 있어서 과수농사에서 성수기가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재배면적당 수익이 떨어졌다. 부족한 수입을 메우려니까 계속 경지면적을 늘리게 됐다. 또, 포도농사, 수박농사, 논농사를 다 짓던 농민이 포도농사만 짓는 등 자꾸 단작화되어 가고 있다.”

이미 3천평 가까운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박씨 입장에선 종자, 비료 등의 부대비용이라도 줄여보자는 심사인 셈이다. 물론 걱정은 있다. 7년 전엔 1년 농사면 포도밭 1천평당 1500만원 이상 들어왔다. 올해야 워낙 과수농사가 수확량이 줄어서 그와 비슷한 정도까지 올랐지만 작년엔 1천평당 1천만원도 안 나왔다.

이창한 전농 정책위원장은 “한칠레 FTA 이후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농민들이 경지면적을 늘리거나 기계화하는 등 자본집약적인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농지를 사거나 시설을 늘릴 때 들어가는 자금은 고스란히 농가들의 부채로 쌓여가는 상황이다. 게다가 단작화가 되면 그 품목의 가격이 폭락할 때 농민들이 빚더미에 앉게 될 것”이라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박씨 역시 부채가 1억5천만원에 이른다. 조금씩 농지를 넓힐 때마다,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생활비마저 부족할 때, 서리 등을 막아주는 포도밭 비가림시설을 설치할 때도 은행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한칠레 FTA가 발효되면서 농가 지원책으로 비가림시설 설치비용을 50% 지원했다. 나머지 50%는 농민 몫, 고스란히 은행빚으로 남은 경우가 많다.



‘한칠레 FTA 학습효과’의 결론


‘단작화’ ‘기업농화’, 이미 농업개방을 주장하던 20년 전부터 계속돼온 정부의 농업정책 방향이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어떤 영향으로 다가올까. 기상이변과 함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품목들의 경작면적이 줄어들면서 해마다 농산물 파동이 거듭되고 있다. 작년 김장철에 서민들을 눈물짓게 했던 ‘금배추 파동’도 마찬가지다. 배추가 한 포기에 2만원 가까이 오르자 정부는 급히 중국산 배추를 공수해왔다. 그와 함께 27%(무는 30%)에 달하는 배추의 관세를 그해 연말까지 수입되는 물량에 한해 0%로 낮췄다. 배추값의 오름세가 점쳐진 올 가을에도 ‘무관세 중국산 배추의 수입’이란 정부의 신속한 대응이 이루어졌다. “농업도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에 맡기겠다”고 줄기차게 공언해온 정부의 입장과는 상반된 태도다.

물론 덕분에 서민들은 싸게 김장을 할 수 있었다. 대신 식탁은 중국산 김치가 차지했다. 만약 한중국 FTA가 이루어진다면 한국 국민은 계속 싼 배추를 먹을 수 있을까? 중국은 몇 년 전까지 자동차, 가정용 모터에 들어가는 희토류를 흙 값도 안 되는 헐값에 수출하다가 가격 경쟁력에 밀린 미국, 호주의 광산이 문을 닫자 수출량을 줄여 가격을 크게 올렸다. 냉혹한 시장의 논리가 작동하는 세계화 시대다.

이 정책위원장은 “계속 반복되는 농산물 수급불안 문제를 근본적인 대책 없이 무관세 수입으로 해결하는 정부는 근시안적”이라면서 “무관세화함으로써 관세로 들어왔을 국가수입이 사라지는, 국가재정을 악화시키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긴급조치가 선례가 돼 이후 수출국이 관세의 대폭인하를 요구할 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7년간 칠레산 농축산물의 수입은 2억7885만7천달러(약3150억원, ‘한칠레 FTA 7년의 평가’ 22쪽)가 늘었다. 쌀은 물론이고, 사과, 배, 육류, 낙농품 등 주요 농산물 대부분은 포함되지도 않은 FTA의 결과다.

한편 한미 FTA는 쌀을 뺀 거의 모든 품목에서 관세를 없앴다. 농축산업도 예외 없다. 게다가 미국은 농축산업에 매년 70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쌀 농가소득의 약 75%를 정부에서 보조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농축산업 강국이다.

정부도 농축산업의 피해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 농업부문 대미 수입만 향후 15년간 연평균 4억2천달러(4천500억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한미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분석은 다르다. 올 초 미 하원 세입위원회 청문회에서 농업분야 증인으로 출석한 밥 스톨먼 전미농업연맹 의장은 “한미 FTA 체결로 연 18억달러(1조9천억원)의 미국산 농산물이 수출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한국의 분석과 무려 1조5천억원이나 차이나는 수치다.

이를 15년으로 계산하면 농업부문 피해규모만 30조원에 가깝다. 한국 정부는 12조2천억원 정도로 밝히고 있다. 추정치가 크게 차이나긴 하지만 한미 양국 모두 두 나라의 농축산물 경쟁 자체가 무색하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향후 10년간 22조원을 투입해 농축수산업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농업 기반을 다 무너뜨린 채 대책을 세운다는 것도 우습지만 피해대책이라는 것도 이미 진행하고 있는 정책사업 예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22조원 중 직접적 피해보전은 1조3천억원이고 나머지는 축사, 과수시설 현대화 등 시설지원비가 상당수라는 것이다.

시설지원은 박씨처럼 50% 자부담이 뒤따른다. 박씨는 규모화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농촌에 사람이 없어서 인부 구하기도 힘들다. 수확철에는 차로 1시간은 가서  사람들을 데려 올 정도다. 또 과수는 기계화가 힘들어 혼자서 지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돼 있다. 기계화된 외국 농산물과 경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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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정신문


한미 FTA로 청양고추 못 먹는 거 아냐?


앞서 소개한 송송이 연구원의 ‘한칠레 FTA 7년의 평가’에선 “칠레 수입시장에서 자동차는 1위, 경유와 철강판은 각각 2위를 질주하고 있다”며 한칠레 FTA의 성과를 평가했다. 하지만 그 보고서 어디에도 한칠레 FTA 발효 후 지난 7년 동안 한국이 칠레와의 무역수지에서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음은 설명하고 있지 않다.(4쪽 <對칠레교역 동향> 표에서 유추 가능). 칠레 시장에서 한국 공산품의 점유율 역시 칠레가 중국(2006. 10 발효), 일본(2007. 9 발효)과 FTA를 체결한 이후 크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칠레산 농축산품의 관세는 계속 0%로 치닫고 있다. 이와 관련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한국무역협회는 “민감한 시기”임을 이유로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농촌인구 300만명, 호당 농업소득 969만원(2009년 기준, 1995년보다 더 낫다), 식량자급률 25%. 이것이 현재 한국농업의 현실이다. 이창한 정책위원장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농지와 농업인력은 급격히 감소하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식량자급률은 현재 25%에서 10% 대로 떨어질 게 분명하다. 현재는 그나마 쌀 자급률이 98%쯤 돼서 식량주권이라고 하지만 그때 되면 ‘식량주권’이라는 말을 쓰기도 민망할 것이다. 그때 돼서도 미국이 농산물을 싸게 팔까? 소비자들의 식탁도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고 점쳤다.

카길, 몬산토 등 다국적 거대식량기업을 앞세운 미국 농축수산품들이 FTA를 타고 한국인 밥상에 올라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현재 청양고추의 종자를 소유한 기업은 몬산토 소유다. “한미 FTA가 되면 몬산토가 종자를 비싸게 팔아서 청양고추를 못 먹게 되는 거 아니냐?”는 자조 섞인 글들이 인터넷 세상을 떠돌고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들 밥상에서 사라질 게 청양고추뿐일까? “쌀만은 지켰다”는 정부측의 항변도 최근 밝혀진 위키리크스 전문내용에 근거해 2014년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상주의 박동준씨는 “지금 쌀값이 20년 전 그대로다. 노동자들한테 20년 전 소득으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겠나? 농업고등학교 때부터 자부심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이제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고 현재 심경을 토로했다.

10월 25일, 한미 FTA 끝장토론이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나자 참관 왔던 농민들은 “위원님들, FTA 하시려면 농민을 밟고 가세요. 2~3조원 필요 없습니다. 농업을 죽이지 마세요”라고 외쳤다. 그 외침이 농업의 죽음은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듯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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