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내 동지의 이름

[54호]

[배진교의 21세기목민심서]
정리 정송이 기자 | ssongn@hanmail.net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1.11.07 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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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오랜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을 기다리며 구청장실에 있다. 구청장이 되기 전에는 함께 구청을 점거하면서 싸웠던 동지들, 지금은 지척에 있으면서도 동지라 부를 수 없는 동지들. 노동자가 조합활동하는 것을 불법이라 해서 조합 사무실도 없고 전임자 두는 것은 꿈도 못 꾸는 내 비밀의 친우들.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다.

구청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폐쇄된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직원 휴게실로 바꾸었다. 어차피 쓰지 않는 공간이고, 우리 구청 식구들도 휴게실이 있으면 좋을 터이니 그렇게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휴게실을 사용한지 일주일 만에 행정안전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기 조합 사무실로 쓰는 거 아니오? 불법인데. 휴게실? 아, 난 모르겠고. 다시 닫는 게 좋겠소.” 

그 공간을 다시 폐쇄해야만 했다. 조합 사무실도 아니고 휴게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임자 문제나 정치자금법 위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진보구청장이 취임했다고 기대들을 많이 했을 텐데 동지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었다. ‘법’이라는 사슬, 그 무거운 굴레에 매어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공무원노조와의 관계가 한 때 냉랭했다. 지면을 통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의 대화 끝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고 계속 해나가는 중이다.  

차가워진 날씨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사슬의 냉기 때문인지 스산해진다. 창밖으로는 남동구청기가 찬바람에 몸을 맡기고 펄럭거린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싶으면서도 깃대에 몸이 묶여 제자리에서 몸부림치는 저 깃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싶으면서도 법과 예산에 구속되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내 처지. 갑자기 깃발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진보구청장을 향한 노동자들의 집회, 진실은?

진보구청장에 대한 기대는 남동구청 앞에서의 집회로도 표현되었다. 작년 8월, 취임한 지 한 달 여만에 민주노총 공공노조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 조합원들이 근로기준법 준수, 단체협상이행 촉구, 셔틀버스 폐지반대를 주장하며 집회에 나섰다. 인천지역 언론들도 “민주노동당 소속 배진교 남동구청장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도시관리공단지부의 사연인 즉슨 이랬다. 작년 2월에 임금단체협상을 했다. 당시 공단 이사장 자리와 남동구청장 자리가 공석이었는데 연례대로 진행했던 것이다. 당연히 이사장이 아닌 공단의 책임자와 남동구청장이 아닌 구청의 책임자가 협상 내용에 동의하고 승인한 터였다. 그런데 이후 3월에 취임한 공단 이사장이 이미 결정된 사항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토요일 유급휴일 준수, 임금인상, 근무여건 개선, 남동국민체육센터 환경미화원 고용 안정 등의 내용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이를 준수하라며 노조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었다. 

공단 측과 의견조율이 안 돼 구청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3자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 조율을 시도했다.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결국, 지방노동위원회까지 올라가 협상은 대부분 타결되었으나 아직 남아 있는 문제들이 있다. 공단지부 조합원들은 이 문제들이 1년 동안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전해왔다. 관리, 감독의 의무가 있는 구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지지대, ‘상시고용심의위원회’ 구성

취임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민주노동당내에서의 우리 구정에 대한 기대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왜 비정규직 문제를 손 놓고 있나? 정규직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서울 노원구, 광주 광산구 등의 지역은 이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였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지난해 12월, 관내 비정규직에 대한 실태조사를 ‘사회통합을 위한 지역사회 네트워크 해피넷’과 함께 진행했고 정규직화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그때까지 관내 비정규직을 총괄하는 부서가 없어서 전체 비정규직의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총액임금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각 팀이나 부서의 사업비에 포함되어 임금이 지급되고 있었다. 

총액임금제는 중앙 정부에서 임금의 총액을 지방정부로 내려주는 제도다. 총액 안에서 임금의 운용이 자유로울 거라 생각될 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총액이라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특히나 남동구는 이전 구청장들이 이미 정해진 기준인력을 초과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패널티를 받고 있었다. 2007년도의 구월, 간석지구의 재건축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감소한 인구분이 반영되어 총액인건비가 낮게 책정되었다. 재건축 이후 10만명 이상 인구가 증가하였지만 증가 인구분에 대한 구청직원 인원이 충원되지 않은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인력의 미충원이라는 패널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공무원 1인당 주민수가 전국 2위겠는가? 이에 반해 중앙당이 예로 든 서울 노원구나 전남 광주 광산구는 총액임금을 모두 쓰고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해야할 일은 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 어렵다고 두 손 놓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실태조사를 통해 기간제 근로자가 125명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도 파악했다. 그들의 요구는 고용불안, 임금인상, 복리후생 등을 개선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8월까지 그들 모두와 두 차례의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그러면서 다른 여러 문제도 발견되었다. 휴가가 무급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일한 시간 외에는 급여가 책정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쉴 수밖에 없는 추석연휴나 성탄절 등은 무급일이었던 것이다. 보건휴가는 당연한 것처럼 무급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고용불안이나 임금인상 문제는 총액임금제 때문에 묶여 있다 하더라도 유급휴가건은 ‘힘없는’ 구청장으로서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휴가 및 보건휴가를 유급으로 확정했다. 거기에 기간제근로자 관리부서를 일원화하였고 유명무실하던 취업규칙을 조례로 변경, 게시하였다. 

식대문제도 있었다. 여태까지 식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일급이 36000원 이하인 사람들에게는 식대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간접적으로 전체적인 임금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외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것은 뻔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 자신들이 문제를 직접 제기할 수 있는 ‘기간제 근로자 협의회’를 올해 연내로 구성하기로 했다. 

또, 남동구 보건소에는 방문간호사들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 비정규직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적극적으로 하여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전문직으로서 장기적으로 필요한 직종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일차적으로는 2년을 초과하여 고용할 수 없는 기간제 근로자인 이들을 2년이 지난 이후에도 고용할 수 있게 했다. 이들 외에도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통해 고용을 보다 안정시킬 수 있는 직종을 찾기 위해 ‘상시고용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상시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했다. 


자율적 예산권과 재정건전성 확보는 지방자치제의 필수요소

보건휴가의 유급화를 인천의 다른 구청들은 하지 않고 있다. ‘남동구는 하는데 우리는 왜 안 하냐?’는 직원들의 불만이 많이 접수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후문을 들을 때마다 으쓱해진다. 묶여있지 않은 반대편 날개를 ‘제대로’ 펄럭였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묶여 있는 쪽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되려면 중앙정부는 자치단체에 자주권한을 이양해야 한다’는 말이 교과서적이라 한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사문화(死文化) 되었다고도 한다. 아직도 그렇지 않으니 계속 나오는 말이다. 총액임금제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광역 단체의 자율적 예산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건전성이 나아지지 않는 한 지방자치제의 정상화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힘들다. 

중앙정부가 전체 예산의 78%를 가져가고 나머지 22%를 지자체에 내려준다. 중앙정부가 60%, 지자체가 40%를 가져가는 일본과 비교하면 너무 적은 수치다. 일본정도만 되더라도 날아다니겠다. 깃발의 묶여 있는 두 귀퉁이 중 한 귀퉁이가 풀리는 것일 테니 말이다. 예산뿐만 아니라 법적인 문제도 남아 있다. 오늘 만날 친우들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적다는 현실이 폐부를 찌른다. 이 가슴을 그들과의 술 한 잔으로 달래야지. 그들의 진정어린 충고와 격려가 내 가슴을 쓸어줄 것이다. 저녁 7시.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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