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07 15:17:58

지난 8월 12일 보건복지부가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것은 약가산정방식 개편이 주요내용으로, 보건복지부는 “국민의 약값 부담이 연간 약 2조1천억원 절감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제약회사 제네릭(복제약)의 가격을 현재는 특허의약품(오리지널)의 68~80%로 상한가를 정하고 있으나 내년 3월부터는 53.55%로 낮추는 것으로 약가의 산정방식을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의약화장품분과위원회(이하 의약분과위)는 정책제안서를 통해 “국내토종 제약산업의 붕괴로 제약노동자들의 일자리 안정기반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발표하고 각 제약회사 노동조합 위원장들을 중심으로 국회와 보건복지부 앞 1인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의약업계의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약가산정방식으로 국내 제약업계가 약화된 틈을 타 한미 FTA 비준 통과 후 세계제약시장의 49%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계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 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 견해다. 이승용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 연맹 전문위원은 “단기적으로 국민에게 약가인하라는 당근으로 작용하겠지만 한미 FTA 비준이 통과된다면 특허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국 등 다국적 거대 기업들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져 의약주권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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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약가 2배 상승, 복제약 판매 안 될 수도
총 265개의 국내 제약회사에서 생산되어 특허등록이 된 신약은 2011년 9월 현재 17개종뿐이다. 정부의 약가제도개편과 한미 FTA로 인해 복제약의 생산과 유통에 의지하는 국내 의약업계가 붕괴할 위험에 처해있다. 의약품 및 의료기기와 관련된 한미 FTA 협정문은 ‘경쟁적 시장도출가격도입,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 도입’ 등을 주요골자로 하고 있다. 이 중 ‘경쟁적 시장도출가격’은 선진7개국(A7) 평균약가에 준하는 가격으로 현재의 약가를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국내 약가는 A7의 평균약가의 48%에 해당한다. 따라서 현재보다 2배 이상 가격이 상승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가 도입되면 약가상승뿐만 아니라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시장독점까지 우려된다.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란, 제네릭 업체인 국내 제약기업이 특허권이 존속 중인 의약품에 대한 제네릭 품목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특허권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FTA협정이 발효되어 이 제도가 도입되는 경우,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특허권 존속기간이 만료된 의약품에 대한 부실한 후속 특허권을 근거로 국내기업의 시장진입을 방해하는 전략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신형근 건강한 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회장은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이 상승하거나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제네릭 회사는 특허만료의약품을 빨리 출시하지 못하니 피해가 오게 되는 것”이라며 이 제도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민영보험사와 영리병원의 횡포
의약품 및 의료기기 분야 외에도 한미 FTA는 금융서비스 협정을 통해 민영의료보험상품에 대한 국가규제가 애초에 불가능하게 했다. 보험료의 상한선을 국가가 규제할 수 없어서 비싼 보험료를 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나아가 민영보험사들이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십분 활용해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강제가입제가 국민들의 민간보험가입을 막아 자신들의 잠재이익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하면서 건강보험 무력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건강보험이 무력화되면 병원 진료비가 높아져 국민은 급여, 비급여 항목까지 포함해 부담해야 하므로 현재의 3배에 달하는 진료비를 내야 한다는 게 의료계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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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진료비를 높이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경제자유구역 및 영리병원 설립 허가건이다. 정부는 “이는 한미 FTA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한국사회의 충격을 감안하여 보건의료 서비스의 개방은 일단 보류했다”는 입장이지만 경제자유구역은 예외다. 때문에 이 구역 안에서는 보건의료서비스를 개방해야 한다. 문제는 경제자유구역이 전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어 결국 전면적으로 보건의료서비스를 개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진다. 한 번 개방하면 래칫조항(역진방지조항)으로 경제자유구역의 의료서비스 개방은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이곳의 외국병원, 다국적 병원 등을 포함한 영리병원은 최고품질의 의료서비스를 내세워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은 고가의 의료비를 청구할 것이다. 대신 민간보험사들과 계약을 맺어 해당 보험에 가입한 환자들만 받아 차별적 진료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경향은 다른 병원에도 영향을 미쳐 전반적인 진료비 상승을 유도하고 영리병원으로의 전환이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동네 작은 의원들은 점점 없어지거나 중대형 병원으로 흡수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경쟁적 시장도출가격’부터 ‘경제자유구역’까지의 내용은 한-미간뿐만 아니라 유렵의 제약회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EU 집행위원회가 “다른 국가가 FTA로 인해 얻는 이익을 EU가 포기할 수 없다”는 발언을 EU 의회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한EU FTA의 미래최혜국대우조항’라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 FTA는 의약품 외에 의료기기까지 포함시킨 최초의 FTA이다. CT, MRI 등 의료기기가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도입되는 한국으로서는 큰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한미 FTA를 비껴갈 수 있는 방법
이제 몇 가지 사례로 앞으로의 의료환경을 예측해보자.
이용환(62)씨는 잦은 술자리와 서구식 식습관의 변화로 2010년, 고혈압 판정을 받았다. 다국적회사에서 나오는 고혈압 치료제 ‘코자’를 복용하다가 다음해부터 국내 제약사에서 나오는 복제약으로 바꿔 복용했더니 2010년 한 해 동안 70만원에 가깝게 들었던 약값이 2011년에는 50만원으로 줄었다. 2012년에는 정부의 약가제도개편으로 37만원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 한미 FTA가 발효됐다. 상황은 역전됐다. 시장도출가격이 적용되는 바람에 ‘코자’오리지널 가격은 금세 2배가 상승해 이제 이씨는 약값으로 140만원을 써야할 판이다. 오리지널의 가격이 오르자 복제약도 동반상승했다. 2016년에는 이씨가 복제약을 먹어도 70만원이 약가로 나갈 판이지만 이조차 불가능하다.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조항으로 ‘코자’복제약의 후속 특허권이 계속 무산되어 복제약을 사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탓이다. 이씨는 이제 연간 140만원을 들여 고혈압 치료제를 먹어야 한다. 고혈압은 죽을 때까지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 앞으로 약값이 얼마나 더 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게다가 다국적 제약회사가 약가결정에 개입할 수 있어서 앞으로 약가는 얼마든지 더 오를 수 있다. 약값으로 140만원이 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처지다.

정나연(32)씨에겐 돌이 안 된 아이가 있다. 독감예방주사를 맞히려 동네 병원에 갔더니 9세 미만 아동은 5만원, 성인은 6만원이란다. 몇 년 전에 조카에게 독감예방주사를 맞힌 언니가 “이 병원이 제일 싸다”고 해서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가격이 아이는 2만5천원, 성인은 3만원이라고 했다. 두 배나 오른 가격이다. 한미 FTA로 약가와 의료비가 두 배 이상 올랐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독감예방주사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를 기반으로 한 제약회사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한미 FTA가 한EU FTA에도 영향을 미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송연희(38)씨는 허리의 통증으로 동네 의원을 찾았다. 한미 FTA체결 이후로 동네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중소병원이다. 찾아간 병원에선 “엑스레이로는 알 수 없다”며 “대형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보라”고 권했다. 그 이야기만 해주고선 진료비로 1만3천원을 받는다. 몇 년 전에는 국민건강의료보험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3500원가량만 내면 됐는데 이젠 비급여, 급여 부분까지 합해 3배를 내야한다.

병원을 나온 송씨는 MRI비용을 알아봤다. 병원별로 천차만별이다. 그도 그럴 것이 MRI가 있는 병원은 대부분 대형병원이었고 이들이 영리화된 지는 오래다. 그나마 MRI비용이 제일 싼 병원을 찾았다. 1백만원이란다. 그런데 의사 얼굴을 보기는커녕 접수처에서 진료를 거부당했다. AIG 보험계약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이 병원은 미국기업의 병원으로, AIG와 계약을 맺고 그 계약자들만 진료대상으로 했다. 다른 병원들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민간보험에 들려고 했지만 보험료가 한 달에 15만원으로 너무 비쌌다. 그래서 삼성의료원과 연결되어 있는 삼성생명에 들기로 했다. 좀 싸다, 13만원. 그런데 삼성의료원은 MRI비용이 다른 데보다 비싸다. 어쩌란 말인가?

고혈압에 안 걸리면 되고 독감예방주사는 웬만하면 안 맞으면 된다. 요통 방지를 위해 평소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운동을 꾸준히 해두시길. 그러면 한미 FTA는 비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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