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연애하냐고 묻지 마세요"

[54호]

[여성르포6] 레즈비언 노동자의 직장에서 살아남기
레이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활동가 |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1.11.07 15:22:47

 

직장에서 레즈비언을 만나보았다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레즈비언 또는 게이,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들도 당연히 이 땅에서 노동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성순(가명)은 30대의 레즈비언 노동자이다. 그녀는 컴퓨터를 다루는 전문가이며, 사무직에 종사한다. 이 직종의 일을 한지 7년째 되는 숙련된 노동자다. 최근엔 일이 많아 밤 11시, 12시까지 철야를 해가며 일을 완수하기도 하고 퇴근하기 전엔 한번에 10분이상 자리를 떠나지 못 할 정도로 노동강도가 세다. 하루에 수십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업무지원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커밍아웃 혹은 원치않는 거짓말

 

우리나라에서 일터에서 커밍아웃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곳이며 하루의 대다수를 보내는 삶의 현장이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나누는 사적인 대화에는 연애 이야기가 다수 차지한다. 레즈비언에게는 가볍게 또한 집요하게 던져지는 연애에 대한 동료들의 관심은 정체성이 노출되지 않도록 지켜야하는 순간순간으로 다가온다. 레즈비언인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기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원치않는 거짓말 혹은 회피이다.

"한번 밝히고 나면, 수위를 높여가야해요. (사귀는 사람이)없다고, 없다고 하고 한참 지나고 나서 아, 이제 생겼다고하면 약간 잠잠해져요. 또 한참 지나고 뭐 있냐고 물어와서, 약간 더 진전이 있었다. 헤어졌다 이야기해줘야 한 풀 꺾이고... 점점 거짓말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그런 이야기를 안해줬으면 좋겠는데. 다들 왜 궁금해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때 그녀는 사귀는 사람의 성별만 바꿔서 이야기한다거나, 대화의 흐름을 깨는 식으로 피하거나, 친한 이성친구에게 동의를 얻어 그 친구를 모델로 삼아 연인처럼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녀가 자신의 사생활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료들은 서운해하고 답답해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도 기회가 되면 이야기 하고 싶다. 자신을 알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힘이 되기 때문이다. 커밍아웃 하고 싶었던 직장동료도 있었다.

여성르포흑백.jpg

 

"예전에 한분 있었어요. 명예퇴직하셨는데, 나이가 꽤 있었는데 혼자계신 분이었어요. 그런데 워낙 그 분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커밍아웃 할 뻔 했지만 안 했어요. 예전에도 어느 단체같은 곳에 가서 정말 친해도 내 이야기를 못하니까 힘들었는데, 전에 한번 그때 같이 활동하신 분을 만났는데 성소수자 행사하는데 오셨더라고요. 그분을 나중에 만나면 이야기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녀의 직장생활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못하고 거짓말할 수 밖에 없는것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이 게이, 레즈비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때도 그녀는 긴장한 상태로 지켜본다.

"회의자리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여자직원들끼리 서로 챙겨주고, 연휴기간동안 보고싶어서 어떻게하냐는 이야기를 하면 둘이 사귀냐는 얘기도 나오고. 동성연애자냐고 해요. 그러면 옆에서 누군가가 '동성연애자'가 아니고 동성애자다 라고 용어를 정정해 줘요. 나는 긴장된 상태로 허허 웃고 있어요. 요즘엔 점점 많이들 동성애자에 대해 아는 것 같아요."

 

결혼, 하거나 하지 않거나

 

동성애자들은 파트너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혼 관계에 있더라도 모두 결과적으로는 결혼을 하지 않은 개개인으로 비추어진다. 비혼의 남성들은 결혼을 하지 못해 일정 이상의 승진의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족을 책임지지 않는 남성은 회사에서도 책임감이 없다는 황당한 편견이 부당함을 낳은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여자들 같은 경우에는 결혼하면 기뻐해주는건 나중인 것 같고, 책임자들 중에는 '이제 일을 어떻게 나눠야 하나. 이제 아기 가지면 그만 둬야되는것 아닌가' 그런 반응 보여서 놀랐어요. 예전같으면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뒀다는 식으로 직접 반응해요. 결혼하는 당사자도 동료들에게 미안해하고. 이상하더라고요. 결혼 안 하면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이 결혼 한다고 그러면 싫어하고. 그 사람의 공백기간동안 자기 할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자기한테는 피해주지 말라는 거죠. 하지만 일은 똑같이 하니까 일하다가 유산하신 분들도 있고... 결혼하면 승진 더 못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자들은."

결혼한 여성은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문화. 그리고 인사나 제도는 이를 전혀 뒷바침 해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보내지는 시선도 마냥 곱지만은 않다. "굳어가는 나의 캐릭터는 내입으로 담고 싶지도 않지만 결혼안하는 여직원이니까 노처녀 이런 이미지로 나중에는 계속 굳어갈테니까 걱정하면서 놀리고 그런게 불편해요. 비하발언이나 성폭력적이진 않지만. 남자든 여자든 결혼 안하면 이상한 사람. 얘가 뭔가 이상한거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니까."

직장 내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이미지나 성역할은 아직도 존재한다. 무척이나 고루하고 누구나 모두가 알고 있지만 바뀌지 않는 무언가. 여성적인 복장, 행동거지,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 등이 그런 것이다. 레즈비언들에게 직장에서 수행받고자 하는 이러한 이미지와 성역할은 수많은 고민들로 남아있다.

"압박을 많이 주죠. 그래도 나는 꿋꿋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여자분들은 다 여성정장이나 치마 입으시고 화장도 하고 손님오면 차도 내오고 막 그래요. 나는 다 안하죠. 전화는 워낙 많이 오니까 자리가 비면 서로 서로 받아줘서 그런게 없어요. 접대나 차 한잔 같은 경우는 예전 직장에서 그런게 있었어요. 심하게. 무조건 여자가 해야되고 남자는 할 일이 없어도 가만히 있어야 되고 그래서 내가 하기 싫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이런거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 내 일이 되어버리면 안되는 거죠. 누가 어린 사람,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정해놨어요?"

 

여성르포최지솔.jpg

 

정규직, 비정규직, 과연 안정적인 게 뭘까요?

 

그녀는 최근에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옮긴 독특한 케이스다.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머물다보니 자기개발에 대한 답답함도 느껴졌고, 조금더 시간 여유가 있으면서 공공의 일을 하는것 같은 현 직장으로 직장을 바꾼 것이다. 비정규직을 경험해 보니 그전에 알지 못했던 불안감이 상당하다 했다.

"전에는 정규직이고 매년 연봉협상을 하는데 형식적인 거예요. 그래도 그건 재계약은 아닌거잖아요. 지금은 매년 재계약을 해야 되는 부담감. 그런게 생겼죠. 보수나 이런 것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점점 생길 것 같아요. 나는 이곳이 일반 사기업보다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하고 왔는데 요즘은 점점 더 사기업화 되고 있어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요즘은 사회 전반적으로 정규직 줄이고 계약직이나 파트타임으로 쓰고 있는 추세다. 그녀는 일반 사기업보다 더 공공적인 현 직장에서도 그러한 비정규직화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높은 직급의 사람들을 명예퇴직으로 그만두게 해 놓고, 그 자리를 계약직이나 외부 파견직원으로 채워 저렴하게 노동자를 사용하려고 한다. 또한 이들을 쉽게 교체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진다고 한다.

"정규직이었을 때도 나는 파견으로 다른지역으로 나와 있었고, 저는 정말 애사심이 없는 편이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회사의 얼굴이다 라는 생각으로 되게 열심히 했었어요. 지금은 열심히 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해요. 회사나 조직을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은 덜 드는 것 같아요. 내가 언제 나갈지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나를 사람으로 안 대하고 이사람 없으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야지라는게 보이니까요."

"내가 간 자리가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자리예요. 그럼에도 직장에서 언제든지 사람을 바꿀 수 있다라는 마인드가 있어요. 너 그만두면 우리는 다른 사람 채용하면 된다. 그건 그 사람 소중한 걸 모르는거죠. 그래서 주변 동료들이 많이 그만두기도 했어요."
"최근에 어떤 이야길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정규직이었는데 회사에서 어떤 문제를 이 사람이 책임지게 해서 내보낸거예요. 잘 다니고 있는 사람을 회사에서 나가라고 해버린거죠. 뜬금없이. 만약 그렇다면 과연 안정적인게 뭔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자르기 힘드려면 정규직이 낫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경험해 보고 나니 아무리 차이가 없더라도. 정규직의 소중함을 몰랐네요. 내가."

 

우리도 성소수자노조 어때?

 

그녀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 학생 때는 노동자로서 노동자대회에 참석하고 싶어 했고 몇 해 전에 이루었다. 또 언젠가는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활동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현재의 직장은 노동조합이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해외에는 성소수자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체성조차 밝힐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하게도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웃팅 등 직장내에서 문제가 있을 때 노동조합은 최소한 조언자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찾아 갈 수 있는,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노조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활동하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수많은 정체성들이 한 명의 노동자에게 존재한다. 성소수자, 여성, 비정규직, 그리고 조금 더 나은 노동환경과 직장생활을 염원하는 정체성을 가진 성순에게는 오늘도 출근한 일터에서 많은 고민들과 느낌들이 교차할 것이다. 그녀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한다. 자신이 건강하면 일은 계속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앞으로 그녀는 꾸준히 일하면서 정규직이 되어서 과도한 업무를 하지 않게 하는 직장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본인이 스스로 제제할 수 있고 그래서 과도한 노동을 하지 않고도 즐겁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 일터를 만들기 위해 역량을 키우겠다는 포부다.

또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남들처럼 기쁜 순간에 축하받고 힘들면 이야기 할 수 있는 직장을 꿈꾼다. 자신의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충격처럼 다가오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곳이 성소수자에게 꿈의 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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