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어느 커피숍이었나요.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누나는 햇빛을 받아 눈부신 테이블 위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울고 있었지요. 한낮에, 술집도 아닌 찻집에서 탁자에 뚝뚝 눈물을 떨구는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거렸지만 전 그냥 편한 마음으로 누나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지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답니다. 누나는 그렇게 가끔 책의 감동적인 한 구절에, 상대의 절절한 말 한마디에, 갑자기 생각나는 어떤 추억에 한 움큼씩 눈물을 떨구고는 했으니까요. 누나가 살아온 그 거친 역사의 풍랑 속에서도 누나는 그 ‘촛불’ 같은 ‘소녀’를 지켜왔지요.
그런데 그날, 부천에 있는 병원에서 머리에 붕대를 동여매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누워 있는 누나에게선 더 이상 ‘소녀’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저도 누나처럼 울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잘 보내드리기 위해 상을 치루는 동안은 냉정하겠다’는 한 후배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울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터라, 그렇게 꾹! 그냥 마음에 담아 눈물을 밀봉해 버렸습니다.
누나를 땅에 묻고 많은 사람들이 서울노동광장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새벽녘이 다되어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 택시 안에서 그 동안 참아왔던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 마냥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눈물은 마르지 않고 꺽꺽하는 신음소리마저 내뱉습니다. 택시 기사님이 백미러로 제 모습을 연신 살피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날 신촌 커피숍의 누나처럼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눈발이 그치자 바람소리도 따라서 그칩니다
어둠 속에서 눈물 한 줄기를 흘리다
아이의 기침소리에 놀라 몰래 마른 손등으로 닦아냅니다
이 세상에 죽음으로 인한 슬픔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다만 내가 처음의 원칙을 그대로 지키느냐가 중요하지. 그래서 인생의 가치관이 중요하지 않을까?”
영등포의 한 음식점에서 누나랑 낮술 한 잔 했었죠. 그때 누나는 대학 입학을 앞둔 큰 딸의 등록금을 걱정했죠. 매달 발행할 때마다 적자를 보는 <노동세상> 덕분에 이미 큰 빚을 지고 있는 누나에게 코앞에 닥친 대학 등록금은 또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요. 그때 누나에게 짓궂은 질문을 하나 던졌어요. 지금껏 한 번도 누나의 삶과 선택에 후회하지 않느냐고. 항상 운동과 변혁에 관해 흔들림 없는 누나의 모습에 샘이 난 걸까요? 그런 누나도 한 번쯤은 후회도 해보고, 유혹에 넘어가기도 해보고…. 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질문을 던졌던 것 같습니다. ‘원칙’과 ‘가치관’, 너무 빤한 답이었죠. 그래서 마음에 큰 울림도 없고. 누나가 그런 제 표정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죠. 그리고 듣게 된 누나의 이야기.
누나는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의협심’이라 했죠. 대학에 입학한 지 1주일, 중앙도서관 5층 난간에서 구호를 외치다가 교내에 상주하던 사복경찰들에게 끌려가던 누군가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했습니다. 누구는 저렇게 5분의 ‘정치선동’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데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 그렇게 시작한 운동은 당신을 학내 정치서클로, 봉제공장으로, 영등포산업선교회로 잡아당겼습니다. 봉제공장서도 몇 번을 도망쳐 나오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같이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처지가 너무 어려워서 힘들어도 도망갈 수가 없었다고 했죠.
누나는 아주 친절하게 제가 갑갑하게 여겼던 그 원칙과 가치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운동에 대한 신념은 홀로 어디 절간에 틀어 박혀서 얻는 그런 깨달음이 아니란다.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치고, 세상에 깨지면서 비로소 형체를 갖춰가는 거지. 흔들린 적 없냐고? 매일 유혹에 시달리고, 핑계를 만들고 싶었지. 그런데 어쩌냐.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런 나를 일으켜 세우고 어느새 나를 그럴듯한 모습의 질그릇으로 빚어 낸 것을. 좀 투박하지만 그래도 쓸 만한 ‘이춘자 뚝배기’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지.”
오랜 세월 눈물을 멈출 수 없게 하는 죽음들이 많은
우리가 태어나 사는 오늘 이 땅에
내가 뿌린 눈물의 뜻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생각하니 홀로 부끄러워집니다
누나를 떠나보내던 날,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취해있었어요. 영결식날뿐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4일 내내 그랬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했어요. 오히려 누나의 두 아이, 지명이와 병규가 어른들보다 낫더군요.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어쩔 줄 모를 때 의젓하게 문상객을 맞이하고, 제 할 일을 찾던 그 모습. 지명이의 의젓함은 누나에게 많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병규는 철없는 꼬마인줄로만 알았는데 말이죠.
그런데 막상 누나를 땅 속에 묻던 그 날. 병규도 더 이상 참기 힘들었나 봅니다. 누나의 관이 땅에 들어가던 그 순간, 영정 사진을 들고 있던 병규의 두 어깨가 갑자기 심하게 아래 위로 들썩입니다. 그때 옆에 있던 지명이가 한 손을 들어 병규의 들썩이는 그 어깨를 다독이기 시작합니다. 지명이가 병규의 귀에 대고 뭔가 이야기를 전합니다. 병규의 어깨는 이내 평안을 찾습니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이제 안정을 찾아가겠지요. 아니 더 바빠지겠지요. 지명이와 병규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누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분주해져야지요.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누나가 가끔 빌려 썼던 그람시의 말처럼 누나 없는 현장을 비관하지 않고 십시일반 노력해서 극복해야지요. 슬픔의 반대말은 ‘의지’라고 여기고. 지금 누나는 하늘에서 예의 그 수줍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혹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그만 슬퍼해. 너흰 ‘뿌리 깊은 나무’도 못 봤냐. 거기 보면 소이가 그러잖아.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나를 찾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한글 반포에 힘써달라고. 내 죽음에 슬퍼할 여유가 어디 있어? 이제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일할 채비 하자꾸나.”
눈물 한 방울이 서늘히 가슴을 씻고 마음을 헹구어
새롭게 어금니를 물게 하는 힘이 있음도 압니다
그러나 눈물은 죽음보다 더 큰 삶의 편을 위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서 눈물 흘리지 말라는 뜻도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은 죽음 속에서 다시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살아 있는 겁니다
살아 있는 동안 서로 나누어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픔이 있습니다
‘누나랑 마지막으로 언제, 무슨 얘기를 나눴더라?’ 누나를 떠나보내며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 장례를 치르는 내내 도통 기억해 내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났습니다. 그냥 여럿이 밥 먹는 와중에 슬쩍 제가 얘기를 꺼냈지요. “누나, 저 노동세상에 글 쓰는 거 그만두면 안 될까요? 이제 소재도 떨어졌고….”
누나는 조금만 더 생각해보라고 하셨죠. 그런데 이제 허락받을 사람도 없네요. 왜 하필 누나와의 마지막 대화가 “못 하겠네요”였을까요. “한 번 해볼게요”였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은 살면서 하나씩 갚아 나갈게요. 누나, 이젠 편히 쉬세요.
눈물을 버리기로 수없이 마음먹는 이 밤
눈물을 버리며 결코 버릴 수 없는 것까지도
함께 버려야 하기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며
이제는 한 사람만을 위해서 울지 않기로 합니다
살아 있는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위해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이 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