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겨울 방학. 얼음 썰매 좀 타보려는데 무논의 물은 살얼음만 겨우 잡히고 꽝꽝 얼어주지 않았다. “얼음은 언제 얼어?” 할머니를 재촉하면, “두 밤만 자봐.” 예보를 듣는 것도 아닌데 할머니는 손가락 마디만 짚어 보고도 척척 얼음 얼 때를 맞췄다. 춥다고 한 낮에 이불 밑을 파고들면, 증조할머니 제사 지났으니 조금만 참아 보라고 했다. 하루 이틀 뒤엔 볕 좋은 처마 끝엔 고드름 녹는 물이 똑똑 떨어졌다. 해마다 같은 겨울이 없건만 수십 번의 겨울을 지낸 할머닌 어린 손주가 안달하는 긴 겨울을 여밀 것 여미고, 묻을 것 묻고, 동일 것 동이며 묵묵히 나셨다. 할머니 품에서 겨울을 나노라면, 두껍고 무거운 솜이불 덮고도 누우면 코가 시린 겨울밤에도 희미한 봄 냄새가 났다. 살펴주시던 할머니에게서 나는 따뜻한 냄새였을 것이다.
계절의 겨울이나 시대의 겨울에 그린 그림엔 누이나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그림 속 여인들은 ‘누이가 짜준 따스한 목도리’처럼 보는 사람을 감싼다. 김남주 시인이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서 느낀 위로를 화가들은 누이와 어머니의 그리운 얼굴에서 찾았다.
겨울 초가에 봄을 들인 어린 누이
오지호 <남향집> 1939
가지에 마른 잎 하나 남지 않은 나무를 보아 겨울이 분명한데도 오지호가 그린 <남향집>엔 봄빛이 선연하다. 초가라고는 하지만 기운 곳 없이 정갈하고 반듯한 집은 햇빛과 볕을 담뿍 받았다. 가지런하게 가꾼 토방 위 오른쪽에 조는 듯 자는 듯 나른하게 누운 개가 따사로운 기운을 북돋는다. 잔가지까지 선명하게 드리운 그림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닮은 푸른빛을 띤 채 토담과 하얀 벽에 부서지는 햇살을 도드라지게 한다. 하지만 <남향집> 전체를 화사한 생기로 채우는 결정적인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부엌 마당에서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 빨간 옷의 소녀다. 시험 삼아 손가락으로 소녀를 가리고 작품을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빨간 옷의 소녀를 가린 순간 연하장에 자주 등장하는 무수한 초가집 풍경과 다른 매력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부엌 문 안쪽에 어머니나 아내를 그렸다 해도 그림은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을 것이다. 발랄한 어린 누이와 같은 소녀가 부엌 뒷문의 빛을 배경으로 서서 문밖을 내다보기에 비로소 봄기운이 맡아진다. 화가는 너무 작아서 얼굴표정을 담기 어려운 소녀에게 하얀 옷깃과 하얀 사발로 표정을 실었다. 흰빛으로는 꽃과 같은 붉은 색이 돋보이게 하고 사발을 들려서 움직임을 만들었다.
일제하 그것도 징용과 전쟁으로 더욱 힘든 때였지만, 넉넉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별다른 고초를 겪지 않은 화가 오지호의 특별한 개인사도 그림을 밝게 만든 이유로 꼽힌다. 허나 “광(光)의 약동, 색의 환희, 자연에 대한 감격! 여기서 나오는 것이 회화”라 여기며 조선 고유의 자연의 빛을 그림에 담으려 한 화가의 마음도 <남향집>을 보면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겨울 한 낮의 화사한 빛과 고향의 색 사이에서 빛나는 누이가 끌어들인 봄이 보는 사람의 기분을 밝게 한다.
묵묵히 겨울을 이겨나가는 어머니
박수근의 아들의 증언을 바탕에 둔 소설 『빨래터』엔 어린 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화가 박수근의 모습이 나온다. 화가 박수근은 몇날 며칠을 같은 그림을 앞에 두고 칠하고 긋고 다시 칠하고 긋고 칠하기를 반복한다. 아버지가 화가니 포스터 한 장 그려 달래서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청에 아들은 ‘아버진 이상한 그림만 그리는데’ 속말을 물고 귓불이 달아오르게 부끄럽고 난감해서 한참을 망설이는 아들. 하지만 화가 박수근은 하루도 쉬지 않고 눈이 어두워지도록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아들 눈엔 답답해 보였지만, 화가의 무던하고 무수한 붓질은 화가의 그림 속 인물들에게 반복한 붓질만큼 두터운 인생을 새겨 넣었다.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1962
화가의 그림 속 인물에선 오랜 세월을 산 화강암처럼 단단하게 삶에 뿌리를 내리고 벽화와 같은 굵은 선과 색처럼 소박하지만 굳건한 생명력을 담되 부드러운 선만큼 어진 성품이 읽힌다. <나무와 두 여인>엔 일제와 해방, 분단과 전쟁을 겪고 다시 분단을 겪어온 어머니의 초상이 담겼다. 수차례 난리를 겪는 동안 뽀얗던 소녀의 피부는 화폭처럼 거칠어졌다. 여리고 수줍은 많던 누이는 함지에 팔 것을 담아 장터로 나가서 목청 높여 손님을 부르고, 흥정을 걸어오는 손님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고 짐짓 큰 소리로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기도 하는 어머니가 됐다. 우람하나 휘고 앙상한 나뭇가지는 여전히 시린 겨울을 말하지만, 함지를 이고 찬 기운을 덜자고 팔짱을 끼고 장터로 나가는 어머니의 걸음은 씩씩하다. 왼쪽 여인은 또 다른 어머니다. 자신은 찬바람을 맞으며 길을 가더라도 아기는 찬바람 들어갈 새라 고개만 겨우 내어놓고 포대기를 둘렀다. 두 여인은 오늘만 길을 나선 게 아니라 오랫동안 꾸준히 나무 밑을 지난 것으로 보인다. 또 내일도 모레도 무던히 아이를 업고 함지를 이고 길을 가리란 믿음이 인다. 단순하지만 새긴 것처럼 뚜렷한 선과 늘 한결같은 자연의 색이 불러일으키는 푸근한 믿음이다.
박수근<모자> 1961
박수근의 <모자>다. 동그란 어깨선과 부드러운 미소, 따뜻한 눈길, 아기가 가장 편히 누울 수 있게 구부린 팔에서 어머니의 부드럽고 깊은 사랑이 보인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앉은 어머니의 크고 두툼한 손에선 어떤 경우라도 아기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방금 젖을 먹였는지 아기는 엄마를 쳐다보며 기분 좋게 장난을 한다. 세상 어떤 바람도 엄마 품에 안긴 아기를 괴롭히지 않을 것 같다.
오지호의 누이와 박수근의 어머니는 색조는 달라도 모두 훈풍을 불러온다. 그늘진 시대에 화사한 봄빛을 불러내고 모질고 험한 세상에도 무던한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는 두 화가의 시선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