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10개월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3자간 통합을 공식 결의한 지 3개월이 지났다.
통합진보당은 통합의 가치와 진보의 가치를 당명에서 담고 있다. 통합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조직이나 기구 따위를 하나로 합침 혹은 여러 요소들이 조직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룸. 또는 그런 일을 말한다. 진보란 말 그대로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혹은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이라고 한다. 과연 현 시점에서 통합진보당의 정체성 혹은 정통성은 지켜지고 있는가, 그리고 외연의 확대는 얼만큼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구 민주노동당 정성희 전 최고위원은 지난 1월 29일 페북에 올린 글을 통해 “특정정파의 무능과 패권이 통합진보당을 망치고 있다. 양강구도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발빠른 차별화 전략 기획, 인적 물적 집중투입으로 당의 지지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중심의 진보대통합, 패권주의와 분파주의 청산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라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공연하게 민주당과 진보진영과의 통합을 타진하고 다녔다. 그런 이해찬 전 총리가 백낙청 교수의 ‘2013년 체제’에 대한 비전을 야권이 공히 실현할 헌장이라고 공언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은 세력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올 것이란다. 민주당내 ‘전략통’이라고 불리는 그의 발언을 두고, 무상급식 무상의료 부유세 등 진보정책과 담론을 생산해온 진보진영과 통합진보당에 대한 그의 오만함 혹은 비아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해찬 전 총리의 발언대로라면 통합진보당의 비전은 자신들과 뿌리는 같고, 정책만 조금 다르다는 주장으로 들릴 법도 하다.

2013년 체제 담론이 주는 역설의 교훈
백 교수의 ‘2013년 체제담론’은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체제변화 자체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공통의 지향을 담고 있기 때문에 향후 야권연대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도 있다. 그러나 백 교수의 ‘2013년 체제’담론을 통해 곱씹어야 할 핵심은 오히려 명백하고, 간단하다.
통합진보당은 40개항의 강령과 이를 요약한 5대 비전을 통해 그 나름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안정당 수권정당 정책정당을 지향하는 통합진보당으로 볼 때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진보정당으로서의 당적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위해 통합진보당은 이를 기초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와 세상을 향한 체계적인 당원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또한 그에 걸맞는 대국민홍보 사업 역시 시급하고 광범위하게 전개해야 한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교육자료 몇 쪽, 워크샵 몇 번으로 이뤄질 일도 더더욱 아니다. 통합의 가치와 진보의 가치를 옳게 실현하기위해서라도 당원들과 지지자들, 국민들에게 새로운 세상과 사회에 대한 전망, 설계도 제시를 마냥 미룰 수만은 없을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세개의 물결무늬-각각 노동자, 농민, 시민을 상징-와 보라색을 둘러싼 작은 논란 역시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가능한 조속히 진보에 대한 분명한 비전 제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낮은 지지율, 과연 당명이 원인인가?
통합진보당 창당 직후 10.2%의 지지율에서 최근 3.2%로 낮아진 지지율을 놓고도 안팎으로 말들이 무성하다. 통합진보당의 대변인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당명을 헷갈려 한다”며 지지율 하락원인의 하나로 당명의 혼동을 꼽았다. 오히려 이로 인해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의 차별성, 구 민주노동당과의 차별화에도 실패했음을 자인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당명(黨名) 약칭문제로 인해 ‘예민한 사건’도 벌어졌다. 국민들에게 보수주의 세력, 자유주의세력, 진보세력으로 3자 정립, 각인되기 위해서 당명을 ‘진보당’으로 약칭해서 불러달라는 통합진보당의 당대표 한 분의 기자간담회 발언이 그 발단의 계기가 됐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2011년 12월 2일 중앙선관위의 ‘정당명칭의 유사명칭 해당여부에 관한 질의와 회답’을 받아내면서 여기에 발빠르게 대응한다. 앞으로는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통합진보당을 진보당으로 약칭하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언론기사 사용금지 가처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과의 변별력이 떨어지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풀기 위한 통합진보당 당대표의 고민도 느껴지고, 진보당의 대응도 이해되는 대목이다.
통합진보당의 시스템, 과연 진보적인가?
통합진보당의 시스템은 문제가 없을 까 궁금해졌다. 3개월간 당 조직 운영과정을 통해 드러난 상황을 한번 되짚어보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세 명의 당대표가 모였다. 그런데도 각종 현안에 개입하여 통합진보당의 차별화된 입장을 알리는데 실패하고 있다. 당 지지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도 부재하고, 통합된 당의 역량이 대표단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당 전체가 총선 후보를 조정하고, 선출하는 국면으로 지나치게 일찍 쏠려버린 인상을 국민들에게 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통합진보당은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지적이다. 당대표를 중심으로 집중되지도 않고 뭐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보고도 제대로 없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당대표를 하고 당을 운영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당대표 한 분의 강력한 질책과 힐난이 터져나왔다. 그제서야 당직자들이 약간 움찔했다는 ‘카더라 통신’도 떠다니고 있다. 과련 사실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1월 8일 제2차 대표단 워크샵에서 제안된 통합의 시너지와 공동대표단의 지도력을 보장하기 위해 기획, 제안된 정무기획회의의 구성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제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당직자들은 정무기획회의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대표단 회의에 안건을 올리는 단위가 이중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사무총국 실장들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의와 정무기획회의의 역할과 위상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이는 통합진보당이 당면한 문제점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한 채,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구를 ‘형식적’으로 구성한 결과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통합이후 당내 민주주의와 시스템의 정비는 현재 총선이 주는 현실 규정력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당의 실천력 역시 연합정치와 당내정치 사이에서 이미 무력화되었다는 자책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현실정치, 정치공학적인 이해득실을 통한 계산이 당의 원칙과 기준, 시스템을 갉아먹고, 당의 비전과 전망을 생산하는 데 게을리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당의 정식 인준과정 없이 국민들과 언론에 공개된 일부지역의 선거연합 합의 및 방침 결정의 파장과 여파 역시 바로 그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토대, 계급적 지지세력은 어디에서 ?
통합과정과 그 이후, 당의 정체성, 이를 구조적으로 보장하는 당내 기구와 각 급 당부(당조직)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동자, 농민에 대한 보장 혹은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그냥 넘기기엔 쉽지 않다. 향후 전농과 민주노총으로 표현되는 노동자 농민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입장, 노동자 농민들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입장으로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민주노총 1.31대의원대회 역시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의 비례진출을 위한 결정과 그 실현을 위한 당원가입사업,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전현직 간부 100여명의 민주통합당 당원가입은 어쩌면 그 여파를 예고편처럼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반면에 민주통합당은 지난 1월 20일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과 내가꿈꾸는 나라 공동대표 남윤인순을 노동, 여성몫의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각각 선임했다. 게다가 민주통합당은 20,30대의 정치적 열망을 끌어안기 위해서 청년비례대표 경선이라는 방식으로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각 정당의 입장에서 올해 총선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죽고 사는, 즉 사활(死活)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산술적으로만 본다면 다수의석을 얻는 당이 여당이 되고, 그 다음은 야당이 되고, 그 다음은 제3당. 그도 저도 아니면 군소정당으로 전락된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입장에서는 야권단일후보, 정책합의, 정치권력의 공동운영을 내용으로 하는 야권연대를 ‘진보정당의 역량 축성기 집권전략’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리더쉽과 집권전략을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진보적 집권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계급전략에 소홀해지는 경향에 대해서는 다시금 뼈저리게 자각해야 한다.
의외로 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해당계급계층에 대한 일목요연하고 분명한 당의 정책을 시급하게 수립하는 것은 물론 ‘당대표를 비롯한 당간부들의 헌신적인 현장방문’의 기풍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장방문사업이 형식적으로 흐르거나 정략적 방편으로 되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그 다음으로 꼽는 것이 바로 일상적인 당의 논평이다. 통합진보당 합당이후 중앙정치현안에 비해 노동, 농민들의 현안 논평 비중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당의 논평을 분석해본결과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 덧붙여 현장에서 접근하기 쉬운 다양한 인터넷 매체와 선전물의 생산능력 역시 절대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당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국민과 여론에서 멀어지는 이유, 제도언론의 외면?
모바일 참여방식을 전격적으로 채택한 민주통합당의 당대표 경선에 참여한 국민들의 참여열기와 반응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특정 정당의 당대표를 뽑는 데 당원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의 가부를 떠나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투표에 참여한 국민참여인단 수가 79만(실제 참여인단수 65만)이다. 예상 밖의 참여에 통합진보당 당직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한나라당의 20대 최고위원 임명과 민주통합당의 청년비례 경선모집 등을 둘러싸고 20,30대 청년세대들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대책과 행보에 대한 여론도 분분하다. 민주통합당의 청년몫 최고의원은 청년비례대표 경선의 최고점자에게 배정될 예정이다. 이 와중에 벌어진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에 대한 청년비례 출마 논란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진보신당의 의제에 대한 의지와 감각, 실천력에서도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진보신당은 군인, 공익근무요원 및 의무경찰 등 병역의무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진보신당 청년위원회를 통해 초저임금과 실업수당 지급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진보신당 전당적 차원에서 소위 이슈파이팅을 하고 나섰다. 특히 직업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목숨을 걸고 일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못하는 국가가 청년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강제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더욱이 군인들에게 최저임금 지급은 대다수 청년의 삶과 관련된 군 문제를 복지와 인권의 관점으로 풀기 위한 시작이자 군가산점을 대체할 수 있는 병역 문제의 또 다른 해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법이 정하고 있는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현재 현역 병장(육군 기준)의 시급은 459원이고, 2012년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4580원이다.
결론적으로 국민과 여론에서 멀어지는 이유로 통합진보당이 과연 제도언론의 고의적인 외면탓만 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볼 일이다.

원내교섭단체구성을 위한 20석과 진보정당의 정체성
4.11 총선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최고 기대치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가능케 하는 비례포함 총20석의 국회의원 당선숫자일 것이다. 이대로라면 10석도 쉽지 않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다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진단과 분석은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자리수 지지율,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대한 당원들과 지지자, 주요 당내 정치세력들의 현실적인 열망을 이겨내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즉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이기도 하고, 총선의 정치공학을 피해갈 수 없는, 제3당이 되기 위한 현실지표이기도 한 때문이다.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은 13%의 당지지율로 8석의 비례대표를 얻었다. 올해 4.11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원내교섭단체로 진출하기위해서는 지역구대표 10석 , 비례 대표10석을 차지해야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통합진보당은 당지지율을 최대한 16%이상 획득해야 한다. 그간의 선거경험으로 볼 때 야권연대를 통한 야권단일화 총선전략일 경우 오히려 통합진보당에 대한 당지지율 제고가 쉽지만은 않다고 하는 분석이다.
최근 ‘나꼼수’의 성공사례에 힘 있은 바 크지만, 유시민 대표와 노회찬 대변인의 팝캐스트 방송 ‘저공비행’, 이정희 대표의 ‘희소식’ 등은 당원과 지지자들,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을 모색하고 있는 절박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통합진보당의 전략, 비전과 전망, 국민들에게 다가서는 실천의 부재, 다양한 정치세력 안에서도 통합력에 대한 ‘오래된’ 갈증역시 그에 비례해서 점증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지금은 다가올 공직, 당직 경선국면으로 인해 통합진보당의 당원 확장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10만 당원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반대로 그에 걸맞는 당의 전략적 기능과 실천적 면모, 당원 민주주의를 어떻게 성숙, 성장시키고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오직 ‘그들만의 리그’를 극복하는 것은 실력과 당원 수밖에 없다는 말로 자조하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비례와 당직선거를 준비하는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라는 당내 회의와 좌절감은 과연 없다고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혁신이란, 무릇 새로운 전통의 시작이라는 금언이 있다. 분석과 진단이 다르면 방법과 대안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하는 것과 원내교섭단체 20석은 결코 동시에 잡을 수 없는 두 마리의 토끼일 뿐인가.
‘가로등 아래서 잃어버린 열쇠 찾기’ 라는 이름의 우화
다음은 이슬람 수피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밤 나스루딘이라는 사람이 집으로 향하던 길에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 지나가던 행인이 가로수 불빛 아래 무릎을 꿇고 미친 듯 무언가를 찾고 있는 나스루딘을 보고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스루딘이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자, 친절한 행인은 허리를 숙이고 열쇠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세 시간이나 찾아보았지만 열쇠를 찾을 수 없자 행인이 물었다.
“정말 여기서 잃어버린 거 맞소?”
그러자 나스루딘은 작고 어두운 골목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니오! 저기 캄캄한 데서 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행인은 기가 막히고 화도 났다.
“그럼 왜 이 가로등 아래서 열쇠를 찾고 있는 거요?”
나스루딘이 대답했다.
“여기가 환하니까요”
브라이언 로빈슨은 자신의 책에서 이 우화를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어둠 속에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어둠 속을 가야만 한다. 인간의 마음은 같은 것을 좋아하고 변화를 싫어한다. 그러나 변화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에만 집착한다는 것은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다. 아무리 옛날 방식을 고수하려 하더라도, 변화는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진보, 나아갈 진(進)에 걸음 보(步). 즉, 먼저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에는 내용도 있고, 형식도 있고, 방법도 포함된다. 생활?과학?사상 모두에 있어서 먼저 나아간다는 뜻이다. 세간에서는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있고, 몸은 현재에서 나아가지 못 하고 있는 진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어쩌면 통합진보당이 직면한 상황의 원인은 바로 또 다른 이름의 기득권에 포박된 진보, 즉 보수(保守)로 변질된 것은 아닌가라는 탄식마저 나오고 있다. 진정한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나아가고 있는가? 오늘 통합진보당에게 진보와 진보정당에 대해 다시 묻는 이유이다. 반면에 통합진보당내 망라된 각 정치세력들은 잃어버린 열쇠를 아직도 가로등 밑에서 찾고 있는 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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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교수의 ‘2013년 체제 담론], 과연 무슨 내용을 담고 있나?
백낙청 교수의 ‘2013년 체제 담론’은 1987년 6월항쟁이 한국 사회에 일대 전환의 계기를 이룬 것처럼 2013년 새 정부 출범을 동아시아, 남북관계 등 새로운 사회 건설의 계기로 삼자는 전망과 희망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연합 건설을 2013년 체제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를 최근 한국정치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복지문제와의 상관관계로 설명한다. 전면적 내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개 복지의 본격적인 실현 시기를 2013년으로 꼽고 있다. 많은 이들이 복지담론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평화담론과 결합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재정조달을 위해 상당한 수준의 국방비 감축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넘을 필요가 있다.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이를 빌미로 수구세력이 득세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복지확대를 위한 정치적 동력이 생기기 어렵다는 사실까지도 고민되어야 한다.
또한 복지를 2013년 체제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되 그 실현을 위해서는 재정, 성장, 공정?공평, 효율 등 다양한 문제들과 정교하게 결합된 설계가 필요하다. 다음 정부는 현 정권이 급격히 늘려 놓은 국가 및 공기업의 부채를 떠맡을 운명이므로 냉철한 계산이 한층 절실하다.
다만 정치 및 운동의 표어는 한정된 수효라야 위력을 지니기 때문에 취사선택이 불가피한데, 어떤 것을 앞세울지는 토론해볼 사안이다. 또한 성차별 철폐는 평화와 복지, 공평담론에 모두 연계되지만, 그 자체를 ‘3대과제’ 또는 ‘4대 과제’의 하나로 부각해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환경문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생활양식을 친환경적이고 생명존중적인 것으로 바꾸는 ‘생태전환’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설계에서 핵심을 이룬다. 환경문제가 ‘기본적인 것’과 직결된다는 생각이지만, 2013년 체제의 주요 구호로 내걸기에는 너무 장기적이고 범인류적인 목표이다. 다만 그것은 원대한 과업인 동시에 지금 당장 절약하고 절제하고 배려하는 생활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할 성격이 크다. 평화나 복지, 공정?공평 등의 온갖 현안에 그러한 인식이 배어들어야 한다. 따라서 환경문제가 정당들의 정강, 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할 것이다. 원전의 안정성문제, 에너지절약과 친환경에너지로의 정책우선순위 변경 등 각종 중?단기 사업은 곧바로 시작해야 한다.
마음밭을 잘 가꾸는 공부와 세상을 바꾸는 사업, 시민사회의 각 분야에서 그날그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과 함께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설계하고 남북연합을 준비하는 작업들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시민참여형 통일과정’ 같은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