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에 간 진보농사꾼

[39호]

강병기 경상남도 정무부지사
신정임 기자 | lworld.sji@gmail.com /사진 권종국 기자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0.08.10 19:50:19

“당신들을 뽑고 싶습니다.”

국민은 전혀 안중에 없는 정치에 지쳐있던 올해 초, 영화 <밀크>를 만났다. 성소수자 최초로 미국 시의원이 되었던 정치인, ‘하비 밀크’의 삶을 그린 영화 <밀크>에서 하비 밀크는 투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정치로부터 소외받아온 ‘당신’들을 뽑고 싶다고.

 

“저 자신이 민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2008년 진주을 국회의원에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60년대 배 안 곯아본 사람 어디 있겠냐 문제는 현재다, 지금 없는 것 없이 부족함 모르고 사는 사람은 약값 몇 푼 때문에 온 가족이 자살을 고민하고, 신용불량자 신세를 깡소주로 달래는 서민의 마음 절대로 알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농사빚으로 가난하지만 떳떳하다, 이 지독한 가난의 설움을 정치적으로 끝내야겠다는 확신을 가슴 속에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서민의 대변자’임을 자처한 강병기(49) 민주노동당 전 최고위원의 이야기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취직 잘 되는 공대로 대학 전공을 택했던 그가 가난은 개인의 탓이 아님을 깨닫고선, 가난을 용인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농민운동을 거쳐 정치인으로 이름표를 달리 달았다.

 

2010년 7월, 그에겐 경상남도 정무부지사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생겼다. 민주노동당 출신 인사가 처음으로 광역자치단체 부단체장을 맡아 세간의 이목도 받는다. 강 부지사는 쏠리는 관심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농사꾼들은 ‘땅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얼마만큼 정성을 쏟고 땀을 흘렸느냐에 따라 수확이 나온다는 말이죠. 정치도 기술로 하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진심을 다해 대중의 마음을 얻고 그 마음을 모아나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라면서 정성껏 정치농사를 짓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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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기 경상남도 정무부지사. 민주노동당 출신 인사 중 최초로 광역자치단체 부단체장을
맡아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강병기 정무부지사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비서실에 1시간 이상의 시간을 빼달라고 하니 난색을 표했다. 간신히 점심시간 +3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약속한 날은 취임식 5일 후였던 지난 7월 9일, 의회에서 막 도착한 강 부지사와 아직 책장도 다 채워지지 않은 새 집무실에 마주 앉았다.

 

정무부지사로 지낸 지난 1주일간 출퇴근은 몇 시에 했는지.

아직 관사가 공사 중이어서 진주집에서 출퇴근하고 있는데 7시쯤 나오면 집무실에 8시 10분 전후로 도착합니다. 퇴근은 6시인데 저는 가능한 정시 퇴근하려고 합니다.

 

이거 첫 질문부터 예상을 빗나갔다. ‘칼퇴근’ 공무원은 옛말, 늦게까지 야근하는 공무원이 많은 걸 알고 있는 기자는 사실 “업무 익히느라 저녁 늦게 퇴근합니다.”라는 답을 예상했었다. 강 부지사가 속 깊은 이유를 설명했다.

“공직사회가 윗사람이 퇴근 안 하면 아랫사람도 잘 못하는 분위기더군요. 제가 퇴근을 안 하면 비서실 직원들과 관용차 기사님도 퇴근을 못하니 저녁엔 주로 외부에 약속을 잡는 편이죠.”

그는 1주일 동안 접한 공직생활이 아직 낯설다고 했다. “공직에 계신 분들은 직급에 따라 대하는 예우가 있는데 저한테는 매우 낯설죠. 허리 숙여 깍듯이 인사를 하신다든지 차가 오면 비서 분들이 차문을 열어주시는 것 등 업무 이전에 공직사회 기풍이나 문화를 익히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말 못할 고충도 털어놨다. “제가 원래 담배를 2갑 넘게 피는 골초에요. 그런데 담배를 못 피니 힘드네요. 흡연실이 있긴 해요. 거기 가서 직원들과 친해져도 좋을 것 같은데 공직사회가 윗사람을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제가 가면 직원들이 어려워할까봐 가지도 못합니다.” 이 기회에 끊으면 좋을 텐데 아직 그러지는 못하고 점심시간 등에 피고 있다고.

 

정무부지사로 내정됐다는 걸 발표 5분 전에 알았다고 들었다. 그래도 하마평에도 올랐었는데 예상하지는 않았는지.

제가 정무부지사가 되지 않을까 예상하기보다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이나 지지하는 분들은 야권 단일화한 강병기가 김 지사 당선시킨데 1등 공신 아니냐, 그러면 그 정도는 맡겨야 하지 않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긴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참 만만찮은 결심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통상이나 경제쪽 전문가가 뒤를 받쳐주는 게 좋다, 민주노동당이 바로 정무부지사로 들어가면 한나라당 반발이 더 심하지 않겠냐 등 정치적 부담이 있는 일이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당사에 출근한다고 차에서 내리고 있는데 지사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늘 발표합니다. 준비하고 계십시오.”라고.

 

야권 단일화로 도지사 후보를 포기하면서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아니라 우리 당원들이나 출마하신 분들께 미안했죠. 끝까지 가면 당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문제나 우리 후보들 당선시키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었을 텐데 그걸 못하게 된 거니까…

 

그는 야권 후보단일화 방안 합의 기자회견을 한 날,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기자회견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와 도당 식구들의 얼굴을 보는데 코끝이 왜 그리 시리던지…. 어제 밤늦게 여론조사와 배심원 비율 재조정 합의에 대해,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특히 힘이 들었습니다. 도당 위원장님이나 저 모두 그렇게 어쩌면 말도 되지 않는 요구를 수용한 것은 중앙의 협상결렬 소식이 크게 한 몫 하였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역사의 소임을 감당해야 함에 있어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 가능한 경우가 없기 때문이지요.」

결국 여론조사 등을 통해 무소속 김두관 후보로 단일화가 됐다. 강병기 민주노동당 경남지사 예비후보 공식사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후보를 사퇴하면 정당투표에 영향을 미칠 텐데 대응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붉게 충혈된 눈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후보 사퇴 후 그에겐 100여 통의 응원하는 전화,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수많은 분들이 보여주신 격려와 위로가 제게 어떻게 하란 명령인지 잘 받들겠습니다. 제 이름이 새겨진 어깨띠와 명함보다 더 성실하게, 내 아들의 내일을 위해 다시 달리겠습니다.” 이런 글을 블로그에 남긴 그는 김두관 후보 선거캠프의 상임 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운동 기간 내내 김 후보와 한몸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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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이 경남에서만큼은 제2당으로 자리 잡아 '현실과 동떨어졌다', '대안 없이 비판만 한다'는
선입견은 많은 깨진 편입니다. 저 역시도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아왔죠."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다

정무부지사 취임식 때 민주노동당 출신이어서 우려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한테 대놓고 “니 걱정 많이 된다, 니 능력 있나, 행정 경력도 없고 어렵지 않겠나” 하는 분들은 없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해도 충분히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또 인정해야 할 부분은 인정해야 하고요. 제가 행정경력이나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건 사실이거든요. 정무부지사의 통상적인 역할 중에서, 우린 애써 피하고 싶지만 예산을 따오는 게 핵심이죠. 그러려면 국회 등에 다양한 인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제가 가진 인맥이래야 민주노동당이나 재야시민단체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정당한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은 과격하다,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인식을 어떻게 불식해 나갈 계획인지.

그런 민주노동당에 대한 선입견, 일정한 오해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경남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지난 10여 년간 확고한 제2당으로서 도민들로부터 검증받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많이 당선됐고요. 완전히 불식되지는 않았지만 경남에서는 “민노당이 과격하다,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한다”는 이미지가 일정부분 극복됐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이미지랑 다르게 살아왔지요. 좋게 표현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늘 받아왔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함께 일을 하다보면 그런 문제는 금방 풀릴 거라고 봐요.

 

정무부지사로서 어떤 역할들을 해나갈 생각인지.

김두관 지사의 성공은 저나 진보시민진영이 공동으로 책임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하면 똑같이 책임을 나눠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지사님의 성공적인 도정을 뒷받침하는 게 저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이죠.

또한 사람이 진심을 갖고 만나고 설득하면 안 통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예산이라는 것도 특정 정당이나 대통령의 쌈짓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볼 때 안 자체가 올바르고 실현가능성이 높고, 나라 전체의 발전과 우리 도민들에게 보탬이 된다고 판단하면 예산 등에서 특별히 소외되거나 인맥이 없어서 안 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고민이자 과제가 있어요. 15년 만에 경남에서 야권 도지사가 탄생했고, 정무부지사직에 민주노동당 출신 인사가 들어왔습니다. 그런 만큼 그동안 도정에서 소외된 계층, 단체, 주민분들로부터 여러 요구들이 봇물 터지듯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요구는 높은데 막상 현실은 저희들이 밖에서 왜 안 해주냐고 싸우고 비판할 때와 다르게 집행을 책임지는 위치에 들어와 보니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기 힘든 사안들이 많을 거라고 봅니다. 그럴 때 오는 그분들의 실망감, 비판도 좋고 비난도 일정하게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고민이 있습니다.

 

그는 정무부지사에 임명된 후 STX조선소가 들어오려고 하는 마산 수정만에 사는 주민들과 공장 폐업으로 길거리로 나앉게 된 노동자들을 만났단다. “그런 민원들을 듣고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하고, 또 힘든 건 힘들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는 게 제 역할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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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기 정무부지사는 "공직경험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진심으로 만나고 설득하다보면
예산을 따내는 문제 등도 해결될 거라 믿는다"고 정무부지사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부드럽게 보듬고, 단호하게 실행한다

이야기 도중 강 부지사가 잠시 양해를 구했다. “잠깐만요. 강 비서님, 뭐 일이 있어서 들어오셨던 거 아닌가요?” 비서가 식당 예약을 알리러 들어왔다가 인터뷰 때문에 그냥 나가자 불러 세운 것이다.

 

인터뷰 내내 강 부지사는 높임말로 얘기했다. 평소 그가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다. 배형택 민주노동당 농민국장은 “위원장님이 전농 사무총장, 정책위원장, 정치위원장을 하시던 4년여 동안 한참 어린 상근자들에게도 한 번도 하대를 하지 않으셨어요. 존대를 하면서도 상근자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던 것도 위원장님의 능력이시죠. 상근자 중 누군가 고민이 있는 것 같으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술 한잔 하면서 고민을 다 들어주셨던 것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라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강 부지사의 매력을 털어놨다. 그에겐 여전히 강 부지사는 ‘위원장님’이었다.

 

남미영 전농 20주년기념사업회 간사 역시 강 부지사의 첫인상이 강렬했다. “전농 사무총장으로 처음 올라오셨을 때, 전농 실무자들에게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동지로서 함께 잘 지내보자, 서울이라는 중앙이 유혹이 많은 곳으로 알고 있다, 사무총장이 무엇을 제대로 하는지 실무자들이 눈 똑바로 뜨고 감시(?)하고 옳게 가도록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셨죠. 또 그 말씀대로 생활하셨고요.” 남 간사는 강 부지사가 동등하게 존중해줘서 실무자로 겪었던 상처들을 치유 받았다고 말했다.

 

정무부지사로 취임하고 직원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그는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이 들어왔다고 생각하시죠. 저도 상상을 못 했습니다. 상상도 못 했던 사람들끼리 잘 해 봅시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했다.

 

그에겐 부드러움 못지않은 단호함도 숨어있다. 결정적인 시기에 결정적인 결단을 해냈다. 2002년 ‘30만 농민대항쟁’도 계속되는 수입개방 압박 속에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농민들의 여론을 받아 안은 당시 전농 정책위원장이었던 그의 결단으로 시작해 결행됐다. 당시 진주농민회에서만 올라 온 버스가 167대였다. 서울 여의도 대회장에 13만여 명이 참가했던 이날 대회가 가능했던 건 전국에서 올라온 차량들을 서울 각 지역으로 분산 주차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노인들한테 지하철 타고 오라 하냐?”는 지역의 숱한 불만을 들으면서도 “절대 양보 못 한다. 전부 차 타고 들어오면 교통정리를 못해 우리끼리 싸우다 내려간다!”고 단호하게 중앙을 통제해 대회를 성사시켰다.

 

전농 정치위원장으로 임명됐던 2003년, 전농의 정치방침을 결정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농은 “이제 농민이 정치에 대해 욕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농업정책이 정치권에서 결정되는 만큼 농민의 힘으로 정치판을 바꿔야만 한다.”는 고민 속에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결정한다. 그에게 “투쟁 대신 정치를 택한 개량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전국의 전농 간부들을 만나가면서 일일이 설득했고, 그들의 변화를 기다려 결국 대의원대회에서 정치세력화방침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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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기 정무부지사는 탈당계를 쓰긴 했지만 진보주의자로서의 정체성까지 버릴 수는 없다고 했다.

 

농사꾼의 자식, 대학 나와 농민운동으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기자가 “정무부지사라는 직책만 아니면 좀 더 편하게 대할텐데 많이 어렵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강 부지사도 맞장구를 놓는다. “그렇죠. 저도 어렵습니다. 예전 같으면 편하게 소주 한잔 하자, 당구 한번 치자고 할 사람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잘 못하겠어요.” 소탈한 그의 성격이 전해진다. 그는 지난 12월, 그의 삶과 정치철학을 담은 <따뜻한 진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왜 책 제목이 <따뜻한 진보>인 거죠?

진보진영이 과격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세상에 원래부터 과격한 사람은 없지요. 과격해 보이는 민중의 투쟁은 이 국가와 사회가 민중의 요구를 막아서 만들어진 노동자, 농민들의 절박한 위기감의 표현일 뿐이죠.

 

그는 <따뜻한 진보>에서 “어머니에게 웃음을 드리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고 썼다. 시골에서도 계속 더부살이를 하다 6살 때 처음으로 ‘우리집’을 얻게 된 그가 여동생과 꼽아본 그때까지 이사 다닌 횟수가 26번이었다.

 

가난한 살림을 도맡아 꾸려 가시는 어머니께 기쁨이 되고 싶어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으로 살았다. 대학을 고르는 기준도 장학금과 취직이 잘 되는 곳이었다. 그런 탓에 문과였음에도 부산대 기계공학과에 특차로 합격했다.

 

모범생 강병기는 대학 1학년 때, 박정희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긴 부마항쟁을 직접 겪으면서 세상을 알아버렸다. 결국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직과 사회운동에 대해 계속 고민하던 그는 어머니를 찾아가 말씀드린다.

“어머니, 저는 원래 이렇게 우리집처럼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 세상을 운명처럼 생각했습니다. 이게 내 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이 세상을 먼저 뜯어 고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졸업장을 포기할 생각입니다. 졸업장 포기하고 이 땅의 평범한 민중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본래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그는 어머니가 뜯어 말리시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키울 때 내 새끼라서 대학 공부를 시키고 나중에 덕을 보자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너를 키우면서 항상 내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네 선택대로 해라! 그런데 병기야, 이 엄마에게 딱 한 가지 소원이 있다. 그것은 네가 졸업만큼은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내 아들이 졸업장만 내게 보여준다면 나머지는 너 알아서 해도 좋다.”

병약한 송아지를 사다 정성껏 키워 그의 등록금 낼 시기마다 팔아왔던 어머니의 노고를 알고 있던 그는 대학졸업장을 어머니께 선물한 후, 농민운동으로 나섰다.

 

아들이 대학 1학년인데 농사를 짓길 바라지 않으셨나?

아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대로 사세요. 저는 저대로 살게요.”라고 말했어요. 축구를 잘 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혼자서 진주중학교 축구부 입단테스트를 받고는 합격했으니 보내달라고 했는데 뒷바라지할 형편이 못돼 못 시켰어요. 그게 미안하죠.

저는 사실 아이가 학원도 변변히 다니지 못했는데 영어를 잘해서 외교관이 되길 바랐죠. 애가 어렸을 땐 “네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때쯤엔 우리 조국은 통일이 돼 있을 테고 그러면 국제적으로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거다.”면서 외교관이 될 수 있는 과로 진학하면 어떻겠냐고 했는데 아이는 “아빠, 저는 실력도 안 되고 돈을 벌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스포츠가 좋아요.”라고 대답하더니 FIFA에서 일하고 싶다고 관련 학과로 갔죠.

 

초등학교 때부터 숙제 안 하냐고 걱정하면 “선생님께 한 대 맞으면 된다.”면서 말문을 막아버린 아들이다. 그가 훈계라도 할 요량으로 “산아, 옛날에는….” 하고 서두를 꺼내기가 무섭게 “즐~”이라고 해서 그 의미를 깨닫고부터는 훈계를 하더라도 절대로 “옛날에는~”으로 시작하지 않는다고. 강 부지사가 블로그를 꾸준히 하는 이유도 바로 아들과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서란다.

 

부인 김미영 씨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에 당선되셨는데 선거운동을 잘 못 도와줘서 불만은 없으셨는지.

김미영 씨가 지난 4년 동안 경상남도 도의원으로 일했는데 이번에 제가 도지사 후보로 나와서 시의원으로 출마했죠. 시의원은 지역이나 학연 등 연고가 중요한데 김미영 씨는 시집을 와서 그런 게 하나도 없어서 선본에서도 3등으로 떨어질 거라고 봤어요. 그래도 저는 붙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미영 씨가 “이번에 떨어지면 이혼이다.”고 엄포를 놓기도 해서 김두관 후보가 따로 일정 있으실 때 틈틈이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죠. 그래도 배우자 없이 혼자 선거운동 하느라 참 힘들었을 겁니다. 선거운동 하다가 다른 후보들 배우자들이 명함 돌리는 거 보면 생각나고 짠 해지더군요.

 

김미영 후보는 선본 사람들도 예상 못한 성적, 1등으로 당선됐다. 10여 년 전, 강 부지사 부부는 나무농사를 짓는다고 논 한복판 위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집도 없어서 그 안에 방을 만들어 생활한 적이 있었다. 비닐하우스 곳곳에 쥐와 바퀴벌레가 바글바글하던.

 

김 의원이 지금도 “내 인생 최고의 스트레스”라고 떠올린다는 당시, 강 부지사는 전농 사무총장 직무대행을 제안받는다. 처자식이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위기상황에서 그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청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 김 의원이 “이곳은 내가 버틸 테니 당신은 서울로 올라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강 부지사는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가장 날카롭게 지적해주고, 비판해주는 사람이라고 김 의원을 치켜세웠다. 거의 10년 가까이 지속돼 온 주말부부생활. 부부금실을 어떻게 유지했냐고 물으니 그가 “서로 기대를 안 하면 된다.”는 파격적인 대답을 한다. “기대를 하면 자꾸 바라게 되고, 바라는 대로 안 해주면 실망하게 되니까요.” 아직 신혼인 사진기자가 이 말을 꼭 넣어달란다. 자기 부인이 볼 수 있도록…

 

탈당계 썼어도 나는 진보주의자

식당 사장님이 오셔서 인사를 하신다. “실물이 훨씬 좋으시네요. 저는 신문 사진에 주름이 많게 나오셔서 고생을 많이 하셨나, 성격이 괴팍하신가 했는데 인상이 좋으시네요.”라고 말하자 강 부지사가 “제가 고생은 많이 하긴 했는데 괴팍하지는 않습니다.”면서 응수한다.

 

진보주의자로 살아온 지난 세월, 그는 고생스럽긴 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에 흔쾌히 달려왔다. 최근 공직자 신분이 되어 탈당계를 쓰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탈당계를 썼다고 문제제기한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제가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저는 여태껏 제가 선택한 걸 제 손으로 한 번도 거두어들인 적이 없습니다. 농민회를 했다, 민주노동당을 했다, 다 제가 선택했고 지켜왔던 거거든요. 형식이든 어쨌든 탈당계를 쓰니까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고, 함께 일하는 당원 분들한테 이상하게 죄송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아시겠지만 공직자 신분이 끝나면 그 즉시 복당하겠다고 이미 밝혔고, 그런 마음을 당원분들이 아시기 때문에 크게 문제제기 하지 않고 ‘열심히 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언론에서도 밝혔지만 공직자의 신분으로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 제가 일하지는 않겠지만 진보주의자로서 가지고 있는 정체성, 마인드를 부인하거나 그럴 의사는 전혀 없고 또 그렇게 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따뜻한 진보>의 서문 ‘동토의 땅을 녹이는 봄 햇살처럼, 따뜻한 진보를 꿈꾼다’에서 이렇게 정치포부를 밝혔다.

「농사를 지으면서 몸으로 배운 진리가 하나 있다. “썩은 나무는 뿌리 채 뽑아야 한다. 헌 땅은 갈아엎고 새 땅을 만들어야 크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바로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이제는 하나씩 하나씩 모이고 있다. 쫙 편 손은 흩어진 다섯 개의 손가락에 불과하지만 움켜쥔 주먹은 다섯 개의 모인 힘이 된다. 그런 힘들이 모이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진리가 살아 숨 쉬는 꿈 같은 세상, 일하는 사람이 당당하게 대접받고 국민이 주인 되는 희망찬 세상을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은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라 한다. 나는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들과 함께 그 길에서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헤어지면서 강병기 정무부지사가 악수를 건네며 “기사 잘 좀 써주십시오.” 한다. ‘아, 이제 정치인 다 되셨네’ 생각이 들다가 식당 주인께 고개 숙이면서 “잘 부탁드립니다.”면서 인사를 건네는 낯선 정치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강 정무부지사가 보여줄 희망의 증거는 어떤 모습일지. 사람 좋은 웃음의 그가 걱정 말라는 듯 바쁘게 다음 일정으로 향했다.


마른멸치

2010.08.18 18:08:44
*.248.159.58

눈물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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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그는 1941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났다. 논이 15마지기 밖에 없었지만 부자로 꼽힐 정도로 가난한 마을에서 자랐다.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아버지와 작은아...
이춘자 발행인 사진 이호준 기자
| 201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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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평생 성교육시대! [42호]
성의 현주소를 말하다

잊었다 싶으면 주요 언론에 고개를 내미는 사건이 바로 성범죄입니다. 그 대상은 여성에서 더 힘없는 유치원 아이들로 번지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습니...
사회 이춘자 발행인
| 201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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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이 밀렸는데 뭐가 실감나?" [인터넷판호]
이소선 어머니의 40년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지하철 안에서 쳐다보는 눈들을 피하지 않았다. ▲ 고 전태일 ⓒ 전태일기념사업회 전태일 "내 3분 있다가 죽을지 10분 ...
신정임 기자
|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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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태일의 '풀빵'이 필요하다 [41호]
박계현 전태일 재단 사무총장

평화시장, 봉제공장, 이소선, 장남, 청피노조…. 이 단어들을 듣고 떠오르는 사람은? ‘전태일’이라 답한 독자에겐 ★★★★를 드리겠다. 별 5개를 받기 위해 ...
글 신정임 기자 lworld.sji@gmail.com
| 201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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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41호]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저는 한국의 영어교육이 요구하는 바대로 주로 언어의 기능적 요소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론 학생들이 교과서의 다양한 주제에도 관...
권혁이 부천독자
| 201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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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한열아, 엄마 손 잡고 [40호]
[인터뷰]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어머니’, 이 단어를 발음할 때 코끝이 찡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부터다. 출산 후 2년이 다 되도록 내 옷은 딱 한 벌 샀지만, 아이의 옷은 막 사주고...
신정임 기자
| 201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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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위한 변명 [40호]

아이들과 체벌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린 맞아야 해요.”라는 아이들의 대답이었다. 요즘같이 10대들의 범죄가 심해지고, 교권이 ...
변정아 부천독자
| 201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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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40호]
비상을 꿈꾸는 알바 청년들의 대화

“대학 졸업하고 바로 대기업 시험을 보는데 그러지 말고 지방 공단이나 중소기업에서 1~2년 일하게 한 뒤 (대기업)입사 지원 자격을 줘야.”(이재오) 열 좀 받으...
이호준 기자
| 201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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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보다 뜨거운 한반도와 청와대 [39호]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미국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명박 정부에 의해 강화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25일부터 28일까지 또 대규모 군사훈련을 합니다. 이번에도...
이춘자 발행인 nodmz@hanmail.net
| 201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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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깊이 간직한 꿈 [39호]
자동차 정비공, 기타를 들다

누구에게나 해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갖고 계시나요? 서...
김희득
| 201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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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에 간 진보농사꾼 [39호]
강병기 경상남도 정무부지사

“당신들을 뽑고 싶습니다.” 국민은 전혀 안중에 없는 정치에 지쳐있던 올해 초, 영화 <밀크>를 만났다. 성소수자 최초로 미국 시의원이 되었던 정치인, ‘하비 ...
신정임 기자
|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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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와 함께 하는 든든한 새벽 [39호]
택시 노동자들과의 대화

총알00, 00를 이용한 범죄, 신호위반…. 폭주족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들이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택시에 대한 이미지다. 이런 택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
글•사진 이호준 기자
|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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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편이 사는 법 [38호]

이번 지방선거기간 동안 무엇을 하셨나요?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셨나요? 지지하는 후보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셨나요? 전 외조를 했습니다. 제 아내가 동네 구...
오장록 서울독자
|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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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 3년, 그 뒷이야기 [38호]
장형일의 세상사는이야기

“주원이의 꿈” 지난해 3월, <노동세상>22호에 쓴 글의 주인공은 주원이다. 실제 이름은 준원인데 글 쓸 때 본인한테 물어보지 않고 써서 가명으로 썼다. 전북...
장형일 신한일전기 노동자
| 201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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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라, 사납게 힘들게 너그럽게 [38호]
<노동세상>이 만난 사람 -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신념의 강자’ 비전향장기수, 그 말만 들어도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고귀한 삶이라고 칭송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보통 사람인 내가 따르기엔 힘든 삶으로...
신정임 기자
| 201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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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 한 잔 할까?" [36호]
가족의 달 특집 '아이들과 아빠의 대화'

참여· 정당인 배형택(36), 딸 배수현(초등4), 정당인 이중원(45), 딸 이민수(초등6), 아들 이진수(초등4) 예술단체 활동가 전식렬(41), 아들 전수찬(중1), 아들 전수빈...
| 201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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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봐서 아는’ 이야기 [36호]
<독자칼럼>

“일주일 간격으로 주야간 맞교대, 주당 평균 노동시간 60~70시간, 토요일까지 정상근무, 일요일 잔업근무. 그렇게 한 달을 꼬박 살아내고 손에 쥐는 월급은 150만...
이종필 서울독자
| 201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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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복직하고픈 노동자죠” [36호]
긴 싸움 위해 정비소 차린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조합원들

한성카센터 이현준 대표. "공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함께 해준 동지들이 있어 서로가 힘이 되었다." 지난 4월16일. 서울 구로동의 조그만 카센터가 개소식으로 ...
글·사진 이호준 기자
| 201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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