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할머니, 이소선

[57호]

[영화이야기] <어머니>
임은희 대구여성광장 사무국장 |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2.02.11 09:57:51

<전태일 평전>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아마 열아홉 무렵이었던 것 같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배가 고프다.’라고 말해야만 했던 한 노동자의 이야기는 그 당시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물음에 답이 되어준 진리와 같았다. <전태일 평전>은 그 후 지금까지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 때때로 마주하는 기억이 되었으며, 그 기억 속에 또렷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전태일의 영정을 가슴에 품은 채 울부짖는 쪽진 머리에 얼굴이 동그란 여인. 그 사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숨을 헐떡이며 피를 토하는 생사의 기로에서도 자신의 말에 대답하라고,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크게 대답하라고 다그치던 아들 앞에 선 어머니의 심정이란 어떤 걸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어머니는 결국 아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고, 아들은 비로소 안심하며 배고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어머니는 그 순간을 영원으로 살아간다. 그 어머니가 이소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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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 작을 소, 선녀 선. 몸이 너무 작아 붙여진 이름.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은 생 전부를 ‘노동자의 어머니’로 사셨던 분. 이소선 어머니는 작지만 크신 분이었다. 당신이 누구의 편에 서야하는지 똑똑히 아셨고 매순간 당신이 서야할 자리에 서계셨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하는 부모의 고통이란 얼마만한 크기인지, 그런 건 상상되지 않는 일이다. 어머니는 그 작은 몸으로 고통을 끌어안고 또 다른 전태일들과 뒹굴며 기쁨을 창조하신 분이었다.

이제 ‘작은 선녀’는 세상에 없다. 2011년 9월 3일 어머니는 아들 곁으로 가셨다.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어머니의 영결식 사진을 보다가 울컥하는 그림을 본 기억이 난다. 그림 속에는 전태일 열사가 어머니의 영정을 들고 있었다. ‘그래, 저게 맞지.’라는 생각에 슬픔이 복받쳤던. 세상에 이런 모자(母子)가 또 있을까? 이소선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기억으로 남아 삶의 곳곳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며, 그럴 때마다 내딛는 우리의 발걸음도 더 힘찰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 개봉하지 못한 작품이다. 몇몇 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고 올 봄쯤에 개봉할 예정이다. 지난 1월 14일 대구에서 ‘영화<어머니>대구프렌즈’ 주최로 시사회가 있었다. <어머니>가 상영되길 바라는 여러 개인과 단체의 후원으로 가능했던 자리였다. 이처럼 극장에 걸리기까지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저마다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다를 수 있고, 생전 어머니의 투사적 면모를 기대하기 쉽겠지만, 이 작품은 ‘보통의 할머니’ 이소선을 만나게 해준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더욱더, 꼭, 개봉되어야 한다. <어머니> 제작 블로그(http://sosun.tistory.com)에 가면 더 많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제작일지 중 이소선 어머니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감독님의 글이 있어 옮겨본다.

“오랫동안 촬영해 본 결과 어머니가 사람들을 대할 땐 일정정도의 패턴이 있더군요. 목사님이나 스님 등 종교인을 만날 때는 배꼽인사, 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날 땐 따뜻하고 긴 포옹, 유가협 어머니들을 오랜만에 만날 땐 포옹과 함께 부비부비, 장관이나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땐 나 몰라라, 그리고 정치인을 만날 땐 포옹 후 가만히 쳐다보다 한대 칩니다. 잘 하라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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