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억 년 동안 대략 5년마다 한 종이 멸종하는 정도였으나 지난 35년 동안 브라질에서만 하루에 4종씩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으로는) 매일 100여 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최근 몇 세대 동안 인류가 파괴한 생태계의 다양성이 자연스런 진화과정을 통해 회복되는 데는 1,000만~2,500만 년이 걸릴 것이다.” <문명과 대량멸종의 역사>
⊙ “(산업화 이전 대비) 2℃의 온난화1)가 현실이 되면 아프리카, 호주, 유럽 남부, 미국 서부 등지에서는 광범위한 가뭄과 사막화가 일어나고, 아시아와 남미에서는 주요 빙하가 녹고, 북극의 빙상이 대규모로 붕괴되고, 동식물종의 15~40%가 멸종될 것이다. 2℃의 온난화가 초래할 수 있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양의 산성화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거나, 툰드라의 상당부분이 녹으면서 메탄이 방출되거나, 토양과 대양의 탄소 순환에 혼란이 발생하거나 하는 대규모의 ‘기후 되먹임(climate feedback)’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게 되리라는 점이다.” <기후변화, 성장의 한계, 사회주의>
⊙ “지구 표면의 6백만 평방킬로미터를 덮고 있는 열대우림은 1분에 0.4평방미터씩 사라지고 있으며…파괴가 계속될 경우 2040년까지는 거의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레디컬 에콜로지>2)
자연 앞에 인간은 왜소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수십억 년의 지질학적 시간대에 걸쳐 자리 잡아 온 자연생태 시스템이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선 이후 급격하게 파괴되고 있다. 인간의 과학기술로 이를 복원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맹랑한 오만에 불과하다는 것이 근래 몇 년간의 대재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모비 딕의 복수는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온난화를 비롯해 생태적 위기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성장논리 역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제로성장’이라는 말만 꺼내도 현실을 무시한 몽상가 취급을 받기 일쑤지만, 현실은 인류라는 종 자체의 존속마저 위협하는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주류경제학 내에서도 생태(자연)라는 ‘외부적’ 요인을 비용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위 ‘환경경제학’이 그렇다. 인센티브나 조세를 통해 환경오염을 줄이고, 환경 기술을 개발하여 생태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의 탐욕, 복수의 씨앗이 되다
“고래는 운명을 손아귀에 쥔 듯 머리를 야릇하게 좌우로 흔들면서 돌진하고 그 전면에 반원을 그리며 퍼지는 커다란 거품의 층을 뿜어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박해에 대한 보복, 험악한 복수, 영원한 악의 등이 가득히 넘치고 있어 산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동심원을 그리는 소용돌이가, 떨어져서 떠도는 보트도, 그 선원들도, 떠있는 노도, 창대도, 한꺼번에 사로잡아 그들이 살아있건 없건 간에 하나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어 빙글빙글 돌면서 피쿼드 호에 속한 것이라곤 나무조각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시계에서 삼켜 버리고 말았다.…심연의 험한 측면에는 음산한 하얀 파도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무너졌고 바다의 커다란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굽이치고 있었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백경(Mobe Dick, 1851)’의 마지막 구절이다. 자신의 다리를 빼앗아간 거대한 고래 모비 딕을 향한 에이헙 선장의 광기어린 복수극이 끝내 자신은 물론 그의 배, 선원들까지 모조리 수장시키고 만다.
상징주의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소설답게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지만, 인간의 탐욕(정복욕)에 대한 자연의 복수라 해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
유감스럽게도 150여 년 전의 섬뜩한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엔진을 단 21세기의 피쿼드 호가 여전히 모비 딕(자연)을 향해 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생물종의 소멸, 삼림 및 토양의 파괴, 유독물질의 확산 등 파멸을 예비하는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지만, 초과이윤에 눈이 먼 에이헙들의 광기어린 질주는 그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다.
자연+자본주의=%&?#$$%@??
물론 현재의 피쿼드 호에도 스타벅3)과 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목소리들이 존재한다.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가 발간되었다. “연못에 수련이 자라고 있다. 수련이 하루에 갑절로 늘어나는데 29일째 되는 날 연못의 반이 수련으로 덮였다. 아직 반이 남았다고 태연할 것인가? 연못이 완전히 수련에게 점령되는 날은 바로 다음날이다.”라며 심각성을 경고한 이 보고서 이후 지구적 차원의 생태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왼쪽은 2007년 9월16일 북극 빙하의 면적(하얀 부분)이고, 2005년 9월21일 북극 빙하의 면적이다. 2년동안 23%의 면적이 감소했다.
2007년에는 세계은행의 수석경제학자였던 니콜라스 스턴이 <기후변화의 경제학>, 일명 스턴 보고서를 집필했다. 주류 경제학자들도 생태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결국 에이헙을 제지하지 못하고 함께 수장되고 만 스타벅의 운명이랄까, 아니면 위기의 심각성에 비해 지나친 신중함 또는 체제에 대한 자신감 탓일까. 이들의 목소리는 위험한 질주를 막기에 턱없이 미약하거나 단지 그 시간을 ‘바로 다음날’이 아니라 ‘그 이튿날’ 정도로 늦추는 수준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주장들이 현재의 상황을 호도하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있으며, 심지어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정치적 의지로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는 환상마저 심어준다는 데 있다.
“차와 버스가 조용해지고 차들이 수증기만을 내뿜으며, 필요 없는 도로를 녹색의 공원이 대체하면서 도시가 평화로워지고 고요해지는 때를 한번 상상해보라. 석유 가격이 배럴당 5달러 밑으로 추락했음에도, 더 싸고 좋은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구매자가 거의 없어서 석유수출기구(OPEC)는 기능을 멈추었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극적으로 개선되었고, 특히 빈민과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이제 쓰레기 매립장은 거의 사라졌고 전 세계 산림은 증가하고 있으며, 댐은 허물어지고 있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수준은 2백 년 사이에 처음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들어갈 때보다 더 깨끗하다.… 사회가 석탄, 핵에너지, 석유를 단계적으로 철폐하면서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노조 운동이 기업, 환경주의자, 정부와 협력하여 노동자를 위한 ‘공정한 이행’을 만들어 내는 데 앞장섰다.”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세상이다. 과연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이런 ‘낙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연적인 자본주의(1990)>의 저자들인 폴 호켄, 에모리 로빈스, 헌터 로빈스는 그렇게 믿고 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경향의 결과로서 수십 년 안에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세상을 ‘자연적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자연’도 ‘자본’이다
자본주의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자본주의 기업들이 ‘이윤’이 아니라 ‘환경’을 걱정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리기 전에, 이들의 ‘진지한’ 제안을 들어보자.
사실 이 책의 저자 중 한명인 폴 호켄(Paul Hawken)은 기업가이자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미래의 부를 훔쳐 현재의 성장을 이루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늘려가는 경제적 가치가 (그것 때문에) 줄어가는 다른 가치 때문에 무의미해지고 있으며, 특히 그러한 방식이 지구상의 생명들을 절멸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생태 위기 속에 아마존 우림은 사막이 돼 가고 있다.
이들은 자본의 범주에 인적자본, 금융자본, 제조자본 외에도 자연자본을 추가한다. 우리가 흔히 자원이라고 이야기하는 광물이나 목재 같은 것 말고도 물을 저장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숲의 기능이나 깨끗한 공기, 습지, 토양 등이 자연자본에 포함된다. 생태계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다. 호켄 등에 따르면 생태계 서비스가 세계경제에 기여하는 공헌도는 연간 36조 달러가량이다.4)
그러나 수세기 동안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마구 사용해 온 생태계가, 자본주의가 뿜어내는 엄청난 독성물질과 무차별적인 채굴, 남획 등으로 인해 고갈되고 죽어가고 있다. 호켄은 자유시장이 가격책정 기능은 뛰어날지는 몰라도 비용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완전한 비용’을 반영하게 만들면 시장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오염시키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라는 뜻이다. 강이나 대기 중으로 독성 오염물질을 방출하는 기업이나 재생 불가능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업, 자동차나 항공기에도 높은 세금을 매기면 기업과 개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생산방법이나 구매 패턴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모든 형태의 자본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자연자본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고 사회는 혁명 없이도 지속가능성을 향해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 폴 호켄 등이 내린 결론이다. 요컨대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들이 굳이 욕망을 줄일 필요가 없으며, 경제 성장이나 고용 창출 등이 ‘건강한 생태’와 동일선 상에 위치할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갖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줄이거나 포기하지 않고도 자연을 지킬 수 있다니, 경제성장을 포기하지 않고도 인류의 파멸을 막을 기적의 비법이 있다니 어느 누가 마다할까?
돈으로 환경을 살 수 있을까
이 비법들은 다양한 포장지를 두르고 있지만, 생태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자본주의 시장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시장 지향적 기법으로 생태문제에 접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시장 지향적) 환경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해법 중 하나가 인센티브와 조세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의 전제는 ‘일정 수준까지’ 오염을 허용해 오염 ‘거래’와 세금 부과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오염 배출을 허용해야만 거래가 가능하고 효율적으로 오염을 감소한 국가 또는 기업이 이를 통해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배출권거래제나 환경세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의무당사국들은 1990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2012년까지 CO2배출량을 평균 5%까지 줄여야만 한다.5) 이 기준량 이상 감축한 나라나 기업은 그만큼의 탄소배출권을 그렇지 못한 나라나 기업에게 판매할 수 있다. 환경을 돈으로 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비판이야 어떻든 자연만 제대로 지킬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으랴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 이 방법은 주류 경제학에서 오랜 골칫거리로 거론돼 온 ‘외부효과’에 대한 고전적인(?) 해법 중 하나다. 외부 효과란 시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경제 현상이라는 의미로, 어떤 활동이 (의도하지 않게) 비용이나 편익에 영향을 미치지만 시장 내부의 가격 시스템에 의해 평가되지 못하는 경우를 이른다. 예컨대 부동산 업자가 어느 지역에 건물을 지었다고 하자.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주변에 전철역이 들어서게 됐고 더불어 어떤 추가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역세권 효과’로 집값이 뛰었다면 이것을 (양의) 외부효과라고 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면 생산할수록 그에 따른 수질의 오염도 심각해진다. 이러한 수질오염은 주변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고통을 주지만 생산자는 이러한 사회적 피해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가 특별히 악독해서라기보다 최소비용-최대효과라는 자본주의 기업의 운영 원리에 충실했을 뿐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화력발전소는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한다. 화력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함에 따라 대기가 오염되고 사회적으로 이로 인한 비용-오염된 대기를 정화시키는 비용이든, 오염된 대기로 인해 발생한 호흡기 질환의 치료비용이든-이 발생한다. 그러나 발전소는 석탄 구입비와 인건비 등만 고려할 뿐, 사회 전체적으로 발생한 외부 비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핵심은 시장인데, 아담스미스 이래 시장이라는 무대는 생산자가 투자한 비용과 소비자의 편익이 모두 보장되는 최적의 가격을 결정해 주는 공간으로 공인돼 왔다. 그런데 무대 밖에서 발생한 이러한 현상에 의해서 사회적 편익과 비용 사이에 괴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부작용도 제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름붙이기 좋아하는 경제학자들이 이를 일러 ‘시장 실패’라고 불렀다. 지난 편에서 소개했던 정보 불균형과 함께 외부효과는 전형적인 시장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돼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미국의 경제학자 ‘피구(A.C.Pigou)’다. 외부효과에 대한 대가가 시장에서 적절히 지불되지 못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 피구의 해법은 간단하다. 외부효과를 발생시킨 활동(현상)을 시장 내부로 끌어들여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대기를 오염시키는 발전소나 오폐수를 방출하는 기업에 그에 대한 비용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를 ‘피구세’라고 한다. 탄소배출권이나 환경세 등은 모두 피구세의 응용일 뿐이다.
많은 이들의 기대와 찬사를 받았던 전기자동차 EV1은 이유도 모른 채 폐기되었다.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투자 상품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시장 밖에서 발생한 요인에 의해 사회적으로 적절한 생산과 편익이 교란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 피구세의 취지다. 다시 말해, 대기와 수질을 오염시키는 기업 활동을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생산 활동을 ‘최적’의 수준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적절한 사회적 비용을 개별 기업의 생산비용에 포함시켜 시장의 교란을 방지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세율을 어떻게 매길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임의로 세금을 매기면 외부효과는 사라질지 몰라도 생산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에 비춰볼 때 올바른 것이 아니다. 피구는 한계 피해액만큼 세금으로 부과할 것을 제안했지만, 오염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불특정 다수를 산출하는 것은 물론 환경오염의 특성상 미래에 미칠 부작용까지 고려해야 할 텐데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도시의 하천을 흘러 강을 거쳐 바다로 흘러드는 물길이나, 지구상 어디라도 무한정으로 확산될 수 있는 대기를 고려할 때 수질이나 대기 오염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을 모두 찾아낸다는 것이 가능할까?
뿐만 아니라 그들 각자가 얼마만큼의 피해를 보았는지, 앞으로 얼마나 장기적으로 해를 입게 될지를 무수한 인과관계를 모두 고려해 산출할 수 있을까? 그건 어떤 슈퍼컴퓨터를 동원하더라도 가능하지 않다.
결국 피구세를 통해 자본주의 시장의 작동을 원활하게 보장하면서 자연환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단지 생태 위기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일 뿐이다.
반면 시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생태 위기는 오히려 새로운 시장의 확장을 의미한다. 지구온난화의 경고가 커지는 만큼 세계 각국에서 개설되는 탄소배출권거래소가 늘어나고 있으며 환경과 기후를 테마로 한 파생금융상품의 종류도 증가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원유유출 사고로 악명 높은 BP((British Petroleum)6)의 토니 헤이워드 회장이 “저탄소 경제구조로 이전해야 한다.”거나 “돈 있으면 친환경 기업에 투자하라.”고 권유하는 팀 플레너리 코펜하겐기후위원회 의장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소위 ‘녹색성장 전략’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아래 파헤쳐지는 4대강 사업 역시 대한민국의 거대 건설사들에게 사상 최대의 이윤을 안겨주는 사상 최대의 토목사업일 뿐이다.사실 이 대목에서 끔찍하고 불길한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주택 건설 및 대규모 국책, 공공 토건사업을 통해 이윤을 독식해 온 대형 건설사들에게 있어서 생태, 환경, 에코 등의 새로운 상표는 전국토를 리모델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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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0.8℃가 더 높은데 이는 지난 백만 년 동안 가장 기온이 높았던 시기와 1℃ 차이일 뿐이다.
2)사실 이런 식의 경고는 이미 식상할 정도로 들어 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삶아진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을 떠올려 보길. 뜨거운 물이 들어 있는 비커에 던져진 개구리는 펄쩍 튀어 나오지만, 적당하게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고 불을 지피면 유유자적하게 헤엄치던 개구리는 결국 삶겨 죽고 만다.
3)합리주의자이자 피쿼드 호의 일등항해사인 스타벅은 모비 딕을 쫓는 에이헙의 행위가 ‘악마의 광란보다 형편없는’ 짓이라며 그의 광기를 제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이상 놈을 추적하여 몰아세운다는 건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을 모독하는 짓이오.” 아이러니하게도 스타벅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중 하나인 초국적 커피전문점(스타벅스)으로 환생했다.
4) 호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환경을 돈으로 환산하는 데 익숙해 있다. 예컨대 ‘갯벌의 생태적 가치’보다는 ‘갯벌의 경제적 가치’라는 제목이 더욱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다. 수많은 환경관련 서적들에는 그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설명하는 대목에 ‘반드시’ 화폐(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5)이 기준은 지구온난화를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기후 과학자들이 주장해 온 온실가스 배출량의 축소 폭과는 대단히 거리가 멀다.
6)BP는 2000년 회사 이름을 ‘Beyond Petroleum(석유를 넘어서)’으로 바꿨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석유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석유는 자연에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최대의 이윤을 내는 ‘검은 황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