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신화 속, 지구는 죽어가네

[46호]

딜레마의 경제학⑫ 성장의 딜레마(3)
여상경 편집장 | lworld.yeo@gmail.com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1.04.06 16:51:36

온난화를 비롯해 생태적 위기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성장논리 역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제로성장’이라는 말만 꺼내도 현실을 무시한 몽상가 취급을 받기 일쑤지만, 현실은 인류라는 종 자체의 존속마저 위협하는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주류경제학 내에서도 생태(자연)라는 ‘외부적’ 요인을 비용으로 계산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위 ‘환경경제학’이 그렇다. 인센티브나 조세를 통해 환경오염을 줄이고, 환경 기술을 개발해 생태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편집자>

언젠가 한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꼽힌 적이 있다. 보수 언론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의 신빙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하지만, 적잖은 한국인이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있다는 것은 일정한 진실을 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에서 구제한 대통령이라는 거다. 60~70년대는 ‘잘 살아보세’라는 건전가요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리는 가운데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혀 ‘부자마을’을 만들기 위한 새벽 노동이 장려되던 시기였다. ‘수출입국’이라는 구호 아래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는 국민성이 찬양받던 그 시절, 초미의 관심사는 ‘성장’이었다.
20세기 중반부터 이 나라 국민을 사로잡아 왔던 ‘성장’이라는 화두는 21세기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자본은 성장과 반공의 날개로 날다

자본주의의 최고선은 ‘초과 이윤’이다. 초과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세포로서 ‘자본’의 증식, 즉 성장(생물학적으로도 성장은 세포의 증식을 의미한다)1)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장’은 체제를 유지하는 생명 활동에 다름 아니다. 현실에서 경제성장은 ‘산업화’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자본주의에서 성장의 주체는 자본(또는 자본의 소유자)이고 그 혜택 역시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간다. 문제는 자본이라는 엔진을 돌려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력과 자연이라는 동력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노동력과 자연을 고갈시켜야만 성장을 이룰 수 있으나 정작 그 혜택은 고스란히 자본이 독식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모순을 무마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성장 이데올로기’다.
자본주의의 혈관 속에 흐르는 ‘성장과 발전’이라는 유전자는 국민의 무의식 속에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성을 구축했다. 성장 이데올로기는 간결하지만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즉, 경제가 성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인데, 성장은 부를 의미하고 부는 행복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성장 이데올로기는 반공 이데올로기2)와 함께 자본주의의 안정과 활력을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성장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의 활력을 강제하는 ‘당근’이라면, 반공 이데올로기는 체제 안정을 보장하는 ‘채찍’인 셈이다.
한국 자본주의 역시 성장을 앞세워 노동력과 자연력을 착취하며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그 과정에서 생태계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성장과 발전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쓸모없는 것’, ‘불순한 것’으로 치부됐다3).
박정희 정권은 “쓸모없는 땅을 옥토로 만들겠다.”며 동진강 하구에서 총 4,000여ha를 매립하는 대규모 간척사업을 시작했다. 전북 부안군 계화도 간척사업이다. 갯벌은 섬유, 가발, 전자산업의 성장과 수출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버려진 땅이었을 뿐이다. 화폐로 환산되지 못한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결국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갖지 못한 채 폐기됐다.
뒤이어 김해, 목포, 서산 등 5만ha가 넘는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간척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히는 서해안 갯벌은 이렇게 야금야금 매립되어 왔고, 서해로 흐르는 5대강 중 한강을 제외한 나머지 4개(금강, 영산강, 만경강, 동진강)는 하구가 막혀(하구언) 생태적 순환이 정지돼 버렸다4).
신화로 구축된 이데올로기는 강력한 철옹성처럼 국민의 의식을 장악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환경파괴 현장으로 기록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이라는 신화로 분칠되어 주변 생태계를 절멸시키고 있다5). 멀쩡한 강을 파헤쳐 운하를 만들겠다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물론 인식의 진전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녹색’을 붙이는 정도의 변화 말이다.

생태적으로 ‘무식’했던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들어 생태계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법들이 등장하면서 (경제적으로) 생태적 가치가 개발 가치보다 더 높게 환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강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태적 가치는 공유재산인 반면 개발 가치는 소수가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국민과 어민들의 반대에도 강행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공유지로서의 생태계를, 독점할 수 있는 자본의 형태로 전환시킨 사례일 뿐이다. 소위 ‘4대강 사업’으로 인해, 그 물을 통해 생명을 유지해 온 수서생물과 사람들의 피해가 커진 만큼 재벌 건설사들의 금고가 채워졌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비(非)토끼’의 토끼뜀 뛰기

그런데 성장은 개별 자본 또는 일국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자본의 증식 욕구는 진출할 수 있는 모든 범위, 영역까지 확대된다. 이미 오래 전에 자본주의 일국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국경을 넘어 세계적 범위에서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경쟁이 전개되어 왔다. 이 지점에서 성장 이데올로기는 패권적이고 이분법적일 뿐 아니라 폭력적인 양상으로 발전한다.
국경을 넘어서면서 성장이란 개념은 일찍 자본주의적 성장을 이룬 나라의 발전 경로와 모습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각 나라(또는 문명)가 걸어온 역사적 과정을 부정하고 선발 자본주의(서구)를 ‘발전을 이룬 나라’ 또는 ‘문명국’으로, 나머지 나라들은 ‘미개한 나라’로 취급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방식은 ‘남’의 정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분류방법입니다. 포유류를 모두 ‘토끼’와 ‘비토끼’로 나누면 고래와 코끼리와 개가 한 범주에 들어갑니다. 이 방식은 유럽에서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실행해온 분류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와 이교도라는 분류방법이 그렇습니다.…이들 각 ‘이교도’간에 무슨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리가 없는데도, 기독교에서 보면 모두 잘못돼 있기 때문에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는 식입니다. 혹은 ‘문명국’과 ‘야만’, 요컨대 ‘유럽’과 ‘유럽 이외’로 나누기도 합니다.(<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라스 러미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문호개방정책(Open Door Policy)이다. ‘하느님이 (미국인들에게) 맡긴, 세계를 문명화시키라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것이다. 문명화란 자본주의화, 곧 미국식 성장 경로를 의미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순간 성장 이데올로기는 폭력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은 자본주의 성장 이데올로기의 물질적·정치적 구현이자 필연적 법칙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의 ‘성장주의 지배전략’이 가능한 토대를 만들게 되었다.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 즉 성장의 표준(척도)으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강력하고 폭력적인 정치군사적 힘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우리들, 합중국 인민은…’으로 시작하는 미합중국 헌법의 전문이 유엔 헌장의 전문 ‘우리들, 국가연합 인민은…’으로 채택된 것 역시 그러한 귀결이다.

이제 세계 모든 나라들은 미국의 기준에 의해 점수가 매겨지고 서열화된다. 미국식 성장모델에 근접할수록 모범국가 대접을 받고 발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한민국의 경제영토가 넓어집니다.”라는 한미FTA 홍보 광고는 그래서 자가당착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영토를 미합중국 경제영토에 합병시켰습니다.”가 진실인 것이다. 이것이 21세기 성장주의 모델의 자연스럽고 모범적인 귀결이며 세계화, 개방화의 본질이다.

그 성장, 빈곤하네

사람들은 왜 성장에 열광하고 집착할까. 사실 성장에의 집착은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정치집단이 보이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경제 성장을 통해 사회적 부를 늘리고 그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풍요롭게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최소한 진보진영의 진정어린 고민일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다. 하나는 현재까지 축적된 사회적 재화는 불충분한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풍요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보다 원초적인 문제이다.
유엔에 따르면 2008년 전 세계 기아인구는 9억 6,300만 명에 이른다. 반면 미국인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1년에 약 150조 칼로리로,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체 식품의 40%에 해당하는 양이 버려진다. 과소비와 낭비만 줄여도 모든 사람들이 먹고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생활물자는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핵심은 성장이 아니라 분배와 정의다. 아이러니한 것은 성장의 측면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인 미국이 사회적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미국 제2의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는 5만여 명에 이르는 노숙자들이 거리에서 생활해 ‘노숙자의 수도’라 불릴 정도다. 2009년 미국의 빈곤층 비율은 4천 780만 명(15.7%)에 이르러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6명 중 1명이 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진정한 빈곤은 성장 전략 아래서 만들어졌다. 세계적 차원의 성장주의 전략에 따라 남미의 원시림이 사라진 자리에 대규모 플랜테이션이 들어섰고, 동남아 해변에는 호화 레저시설이 세워지고 있다. 반면 그 곳에서 대대로 터전을 잡고 살아 왔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생계수단을 잃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극소수의 주민들만이 성장의 인공물 속에서 비정규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뿐이다. 수많은 주민들이 대형 슈퍼마켓의 생필품 진열장 앞에서 서성대고 있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그들의 대지와 숲, 강과 바다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구매력 없음’이라는 낙인이 이들을 사회적 무능력자 또는 빈곤층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빈곤 국가 또는 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해방’이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의 유명 휴양지들은 그곳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은 물론 맹그로브 숲도 몰아내고 호화로운 시설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해 왔던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면서 폭풍과 해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 몇 년 전의 쓰나미 재앙은 성장 및 개발정책이 자초한 결과였다.

여기서 풍요(행복)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슈퍼마켓에서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구매하는 ‘선진국’ 국민들의 식탁에는 열대의 에너지를 머금은 싱싱한 과일과 캐나다산 바다가재가 올라간다. 한편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미국에서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아이들의 1/3 이상, 성인의 2/3 이상이 비만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뉴이코노믹스파운데이션(NEF)’이 발표한 행복지구지수(HPI 2.0)에서 미국은 100위권 밖에 머물렀다. 반면 상위 30위권은 중남미와 동남아 국가들이 차지했다. 68위를 차지한 한국은 1990년 6.7이던 삶의 만족도가 2005년에 6.3으로 떨어지는 등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모든 것이 미국을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
풍요의 기준을 물신화된 화폐의 보유 정도로 평가하는 사회에서는 공동체가 일궈온 공존과 협력의 문화, 전통을 인정하지 않고 검소함과 궁핍함을 구분하지 않는다. 소박한 가운데 수준 높은 가치관을 만들어 온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태와 인간의 합일을 이루어내는 생태주의 혁명은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새로운 사회운영 방식을 요구한다.

파이는 커졌는데 일자리는 줄었다?

한국 국민이 성장에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대규모 실업사태를 경험하면서 성장은 곧 안정된 일자리를 의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 역시 경제를 살려 실업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조금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업의 원인은 성장 정책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최초의 대규모 실업사태는 18~19세기에 본격화된 인클로저 운동 때문에 발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규모로 양을 방목하기 위해 공유지를 목초지로 전환, 수많은 농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추방했기 때문이다. 당시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던 모직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결과였다. 이로 인해 영국은 전역에 농촌에서 쫓겨난 굶주린 농민들로 넘쳐났고 급기야 ‘부랑자 방지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세계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나라들은 성장을 잘 이룬 ‘선진국’들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성장과 실업률은 비례관계에 있음을 반증한다.
성장주의 전략 아래서 노동력은 물론 자연은 일회용 소모품에 불과하다. 가장 빠른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기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실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인 경영 평가보다는 단기적인 주가의 등락이 중요하며, 오랜 근속년수의 숙련노동자보다 쉽게 고용하고 자를 수 있는 비정규 단기노동자를 선호한다. 지속성보다는 단기성6)이, 순환과 소통보다는 직선적이고 경쟁적인 사고가 팽배하게 된다.

생태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천 년간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민들의 일차적 관심은 땅의 건강성과 지속성이다. 그래서 땅의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름, 퇴비를 주고 다른 종류의 작물을 번갈아 심거나, 휴경을 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성장주의 전략에 입각한 농업 방식은 대규모 단작 형태의 환금작물(돈벌이 작물) 재배로 이루어진다.
기계화, 화학화를 통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농부들의 노동을 줄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짧은 시간 내에 보다 많은 수확을 올리기 위해서다. 즉 효율적으로 지력을 착취하기 위해서다.
단작은 물을 많이 소비하고 지력을 빨리 소모시킨다. 화학비료와 농약은 말할 것도 없다. 몇 해 동안 고수확을 통해 이윤을 남긴 자본은 새로운 토지를 찾아 떠나고 그 자리에는 에너지와 양분을 모두 빼앗긴 황무지만 남게 된다.

18세기 영국의 대형 목장. 모직 가격이 급상승하자, 농장주들은 농사짓던 이들을 내쫓아 농장을 목장으로 전환했고, 쫓겨난 이들은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것이 서구 자본주의의 시작이었다.

전세계가 독일처럼 성장? 5개의 지구 필요해

성장 이데올로기는 생태계에 대해서도 패권적, 이분법적, 폭력적 양상을 띤다. 인간중심주의(보다 엄밀하게 자본 중심주의)와 그로부터 비롯된 환경7) 개념, 그리고 자연의 정복자로서의 인간상으로 완성되어 생태계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생태적 위기를 거론할라치면 흔히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다.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든 반증이지만, 한편으로 자연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생태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배부른, 한가한, 철없는’ 등의 수식어를 감내해야 한다.
조금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자연 보호도 좋은데, 현실과 이상을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때 현실은 ‘경제 성장’을, 이상은 ‘자연 보호’를 이른다. 결국 경제성장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을뿐더러,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선발 자본주의 나라들처럼 성장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생태학자이자 독일 그린피스 의장을 역임했던 볼프강 작스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경제개발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될 수 없다. 독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방출량(11.8톤)을 전 세계 인구에 곱하면 680억 톤이 되는데 이는 나무, 채소, 바다 등을 통해 지구가 매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 130억 톤의 5배가 넘는다는 것이다.
결국 전세계가 독일식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핵발전소를 향후 15년 내에 완전히 폐기하고 앞으로 태양에너지를 중심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생태적인’ 나라다.

갑자기 인류가 사라진다면…

‘인류 멸망 그 후(Lift After People)’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식물, 동물, 생태, 토목•건축, 지질, 고고학 등 모든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인류가 사라진 지구의 변화 모습을 그려낸 수작이다. 이 다큐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에서 ‘인류’라는 종이 사라진 것에서 시작한다.
이틀 후 전기 사용량이 줄어들면서 자동적으로 전력생산이 중단되어 지구는 암흑으로 돌아간다. 1년이 지나면 아스팔트를 뚫고 식물들이 세력을 넓혀가고 5년 후에는 도시가 온통 식물로 뒤덮인다. 더불어 이들을 먹고사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들도 도시로 이동하고… 100년에서 500년 사이에 고층건물과 뉴욕 브루클린 다리, 지하철 등 인간이 세운 화려한 금자탑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1,000년 쯤 뒤에는 모든 도시들이 식물과 동물들, 즉 자연에 의해 완벽하게 점령당한다. 인간종의 흔적을 지구상에서 지우는데 기껏(!) 1,000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1,000년이면 아주 긴 시간이라고? 그건 기껏해야 100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시각이다. 지구의 현재 시간을 24시라고 한다면 인류는 기껏 4.8초를 살았을 뿐이다. 수십억 년의 지질학적 시간대를 염두에 두면 인류 문명, 특히 자본주의가 존속한 시간(0.009초)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다.

진실이 이러한데 자연을 지키는 것이 마치 지구를 ‘구하기’ 위한 활동인양 선동하는 ‘자연보호 캠페인’은 자연의 입장에서는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을 지키는 것은 자연이 아닌 인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절멸당하지 않으려면 자연을 존중하고 그 순리를 지켜라. 그게 진실이다.

소설 <백경>의 에이헙 선장은 고래 뼈로 의족을 달았다. 거대한 자연을 정복하려는 야망에 가득찬 에이헙의 육신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래 뼈(자연) 없이는 지탱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 역시 자연(의 일부)이다. 고래를 향해 던진 작살은 자신을 향한 것이 되어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말았다.
성장이냐, 파멸이냐. 무엇을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지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연재를 마치며
소설 <백경>의 화자이며 최후의 생존자인 이스마엘. 이삭에게 주류의 지위를 빼앗기고 비주류로서 살아야 했던 성서의 이스마엘은 아랍 민족의 조상이다. 현재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주류로서 기독교 국가와 핍박받는 비주류로서 아랍 국가들의 처지를 염두에 둔다면, 마치 생태계의 복수에 의해 몰락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대신할 새로운 대안세계는 비주류 집단에서 나온다는 암시는 아닐까.
자연의 일원으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가치와 문명을 만들어나갈 새로운 힘은 자본의 태내에서 잉태되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 그 역할을 자임할 수 있을지 단언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딜레마가 아닐까.

 

1) 경제적으로 성장은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고부가가치란 결국 초과이윤을 의미하므로 자본의 증식으로 귀결된다.
2) 흔히 반공이데올로기를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반공 이데올로기는 대부분의 자본주의 나라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매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빨갱이 사냥’이 그랬듯이 반공을 앞세운 물리적 폭력은 성장 이데올로기와 함께 노동력을 통제하고 착취하는데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 해체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는 반테러 이데올로기, 반이슬람 이데올로기 등으로 변태를 거듭하고 있다.

3) 모든 것이 그랬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성장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탄압받았으며, 농산물은 저임금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턱없이 낮은 가격을 강요받았다. 문화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장을 옹호하고 독려하는 건전가요는 의무적으로 음반에 삽입됐으며, ‘불온한’ 노래들은 퇴폐가요로 금지 처분을 받았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묘지’ ‘붉게 떠오르고’ 등 부정적(?) 표현도 표현이지만,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해야 할 때’에 ‘긴 밤 지새우며’ 무슨 모의를 했느냐는 식의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가히 성장주의 코미디의 압권이라 하겠다.
4) 한강 역시 신곡 수중보로 인해 담수(강물)와 해수(바닷물)가 섞이는 곳으로서의 생태적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신곡 수중보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한강에 유람선을 띄우기 위해 설치됐다.

5) ‘간척의 나라’로 알려진 네덜란드는 한국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해수면 보다 낮은 지대로 인해 총연장 17,000㎞의 댐과 제방을 건설했던 네덜란드는 1992년부터 둑을 허물어 간척지를 습지로 되돌리고 있다. 일직선으로 만들었던 직강하천도 구불구불한 원래 모습으로 복원했다. 침식으로 둑이 깨져나가고 강바닥이 깎여 나가서 갈수록 늘어나는 홍수 피해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하느님이 창조했지만 네덜란드만큼은 우리가 만들었다”고 자부하던 그들이 마침내 물(자연)과의 전쟁을 포기한 것이다.

6)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체제일지도 모른다. 사실 현재 생태계의 상황이나 성장의 양상을 놓고 볼 때,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개념 자체가 형용모순이 아닐까.

7) 생태라는 개념과 달리 환경이란, 말 그대로 (인간을 둘러싼) 주변상황을 의미한다. 환경이라는 개념은 인간과 자연을 주종관계로 바라보는 인간 중심주의가 반영된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존재하며 인간에게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언제든지 파헤쳐질 수 있다. 인간은 자연과 유리된, 자연 바깥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스스로를 자연과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는 우리 인간은 …이 얼마나 오만한 발상인가! …인간 고유의 특성은 대략 600만 년에 걸쳐 진화했다. 이는 곧 인간 고유의 특성이란 약 1000만 년 된 유인원의 특성과 약 5500만 년 된 영장류의 특성, 약 2억 4500만 년 된 포유류의 특성, 약 6억 년 된 척추동물의 특성, 그리고 약 15억 년 된 유핵세포의 특성이 변형된 결과임을 뜻한다. …인간에게 선충류(민물, 바다, 육지 등에서 생활하는 선형동물. 기생충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함-옮긴이)와 동일한 식욕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굴욕적인 사실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요컨대 인간 고유의 특성은 기껏해야 거대한 대저택에 방 한 칸 넓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가장 최근에 들어선 방을 제외한 나머지 방은 모두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오만인 것이다.<진화론의 유혹>, 데이비드 슬론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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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독식, 경제는 질식 [59호]
재벌개혁,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윤성희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선거시기가 되면 으레 ‘재벌개혁’이 거론되곤 했듯 올해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친...
김미숙 편집위원
| 201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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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복병이자 시한폭탄, 가계부채 [58호]

1000조원 육박. 현재 우리나라 가계가 떠안고 있는 빚의 규모다. 1000조원이 어느 정도의 액수인지 가늠이 안 되니 쉽게 계산을 해 보자. 1만원 신권 100장(즉...
김미숙 편집위원
| 201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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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재정위기, 수습할 수 있을까 [57호]
[경제]

올 4월이면 그리스 부채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 만 2년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리스 재정위기는 진행형이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제 부채문제는 눈...
김미숙 편집위원
| 201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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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신화 속, 지구는 죽어가네 [46호]
딜레마의 경제학⑫ 성장의 딜레마(3)

온난화를 비롯해 생태적 위기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성장논리 역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제로성장’이라는 말만 꺼내도 현실을 ...
여상경 편집장
| 201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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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전기자동차의 죽음 [45호]
딜레마의 경제학⑪ 경제성장의 딜레마(2)

온난화를 비롯하여 생태적 위기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성장논리 역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제로성장’이라는 말만 꺼내도 현실을...
여상경 편집장
| 20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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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은 가능한가 [44호]
딜레마의 경제학⑩ 경제성장의 딜레마 ⑴

⊙ “지난 5억 년 동안 대략 5년마다 한 종이 멸종하는 정도였으나 지난 35년 동안 브라질에서만 하루에 4종씩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으로는) 매일 1...
여상경 편집장
| 201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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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자금, 핫머니를 잡아라 [43호]

정부가 단기 핫머니 차단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린다. 핫머니란 투기적 이익을 찾아 국제금융시장을 이동하는 단기자금을 뜻하는데, 이른바 무위험 수익을 추구하는 ...
황기우 전문기자
| 201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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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할수록 종말이 가까워진다 [42호]
딜레마경제학⑨ 떼려야 뗄 수 없는 자본주의 묵시록, 공황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던 2008년, 전 세계 자본가들의 복창을 터지게 한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일명 ‘닥터 둠(Dr. Doom)’이라 불리는 사...
여상경 편집장
| 201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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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환율전쟁의 승자는? [42호]
‘위안화를 정상하라.’라는 미국 vs 침묵하는 중국

환율은 우리 생활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경제변수이다. 특히 수출을 주로 하는 기업에게는 천사와 악마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환율이다. 환율이 높...
황기우 전문기자
| 201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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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고차 시장엔 '똥차'만 있나 [41호]
딜레마의 경제학 ⑧ ‘레몬시장(Lemon market)’과 ‘역선택(adverse selection)’

당신이 홈쇼핑에서 물건을 하나 샀다고 하자. ‘얼짱’ 모델들이 들고 서 있는 ‘신상’의 날렵한 외양에 “얼마나 간편한지 몰라요.”라며 호들갑 떠는 쇼핑호스...
여상경 편집장
| 201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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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내다 쪽박 찬 ‘김우중의 저주’ [40호]
딜레마의 경제학 ⑦ 승자의 저주 (Winner’s Curse)

올 상반기 한 경제신문에 <금호타이어 노조가 대우건설 매각 ‘발목’>(헤럴드경제, 4월14일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금호타이어 노조가 산업은행의 대우...
여상경 편집장
| 201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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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 마, 국가! [39호]
딜레마의 경제학 6)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shower)

아들과 함께 목욕을 한 적이 있다.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춥다며 온수 꼭지를 틀어대던 아들은 곧 “앗 뜨거!” 하면서 반대편으로 꼭지를 돌린다. 이번에는...
여상경
|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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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망치는 막돼먹은 금리씨? [39호]
[금융프리즘]

지난 7월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008년 10월 미국발 금융위기로 당시 5.25%였던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2%까지 낮췄던 기준금리를 2.25%로 인상하기로 결...
황기우 전문기자
|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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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곡선’을 무시하는 부자들의 마케팅 [38호]
[딜레마의 경제학] 기펜의 역설(Giffen's Paradox)

최상류층의 사교모임을 표방하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한 객실. 왼쪽에 있는 '프라이빗 풀(Private Pool) 뒤로 남산이 보인다. 아일랜드는 영국...
여상경 편집장
|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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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의경제학]잘날수록 망하는 <시장 오케스트라>의 비밀 [36호]
자본주의의 ‘어쩔 수 없는’ 구성(합성)의 오류

한 때 인기를 끌었던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주인공들이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 겪는 도전과 좌절을 재미있게 다뤘죠...
여상경 편집장
| 20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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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기자의 금융프리즘 [36호]
‘큰 손’들만의 ‘대박’ 주가조작

나폴레옹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814년 유럽. 영국의 항구도시 도버에서 왔다는 병사가 잉글랜드 남부의 윈체스터 거리를 뛰어다니며 나폴레옹이 죽었다고 외쳤다...
황기우 전문기자
| 20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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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나라 그리스, 유럽통합의 신화를 박살내다 [36호]

그리스 재정위기의 해결 방안을 둘러싸고 유럽연합(EU) 내에서 지루한 논쟁과 외교적 교섭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스 위기는 단순히 일국 차원의 재정위기 수준이 ...
문이얼 아이비스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 20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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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팩(SPAC)’의 ‘스펙(SPEC)’은 몇 점 [35호]
황 기자의 금융프리즘

2월 말 연일 상한가를 이어가던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이 급등락을 거듭하며 과열 양상을 나타내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스팩의 특성상 현...
황기우 전문기자
|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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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쓰면 인플레, 빨리 쓰면 더블딥 [35호]
출구전략을 위한 변명

원래 군사용어였던 ‘출구전략’이 요즘 가장 유행하는 경제용어로 쓰이고 있다. 임무를 완수한 부대가 퇴각하는 절차를 지칭하는 이 말은 경제에도 그대로 대입된...
황기우 전문기자
|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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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의 경제학] 배신이냐 믿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35호]
합리적 선택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승패는 전략 간의 균형이 핵심이다.” “게임의 참여자 모두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을 때, 즉 모든 참여자가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여겨 더 이...
여상경 편집장
|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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