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 마, 국가!

[39호]

딜레마의 경제학 6)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shower)
여상경 | lworld.yeo@gmail.com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0.08.10 16: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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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목욕을 한 적이 있다.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춥다며 온수 꼭지를 틀어대던 아들은 곧 “앗 뜨거!” 하면서 반대편으로 꼭지를 돌린다. 이번에는 “앗 차거!” 하면서 다시 반대편으로 꼭지를 돌리는 아들을 보면서 “네가 꼭 샤워실의 바보로구나.”하면서 웃었던 적이 있다.
‘샤워실의 바보’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밀턴 프리드먼이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시장경제의 신봉자이자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지주인 밀턴 프리드먼의 이 우화는 간혹 ‘시차’의 문제로 인용되기도 한다. 정부가 어떤 경제 정책을 펼 때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프리드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프리드먼이 샤워실의 바보를 통해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치고 나면 그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어떠한 정책도 펴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제발 정부는 가만히 있어라”는 것이다.


주주자본주의의 원조
밀턴 프리드먼의 대표적인 저술인 ‘자본주의와 자유’1)에는 그의 이러한 주장이 급진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한 핵심은 한 가지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중단하고 시장에 맡기라는 것.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자율적 흐름을 저해할 뿐”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에게 있어 정부가 강제하는 과도한 소득세나 최저임금제, 사회보장제도 및 국가나 공기업이 운영하는 연금제도 등은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제도이다. 심지어 그에게는 공교육 제도도 불합리하고 낭비적이다.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학부모가 공교육에 쓰일 세금을 납부해야 하고, 경쟁이 사라진 공교육 체제 하에 서는 더 나은 교수법을 추구할 동기가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 수준 미달의 교사들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리드먼이 추구한 사회는 어떤 모양일까. 예컨대 기업은 돈을 많이 버는 것 말고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
“자유경제에서 기업이 지는 사회적 책임은 오로지 하나뿐인데, 이는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는 한에서 기업이익 극대화를 위하여 자원을 활용하고 이를 위한 활동에 매진하는 것”이다. 그는 “기업의 임직원들이 주주를 위해 되도록 돈을 많이 버는 것 말고 다른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현상”을 “자유사회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허무는…체제전복적인 교리”라고 주장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그렇다. 보다 많은 주주의 이익을 통해 주주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기업의 가장 커다란 의무라는 그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주주자본주의) 시대의 가장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교리로 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자유사회는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선행되어야 하며…경제적 자유는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자유의 매우 중요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강의시간에 졸고 있던 학생이 “이때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이 무엇이냐?”는 프리드먼의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정부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라고 답해 위기를 넘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평소 정부 개입을 철저히 반대했던 그였지만 정작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는 강력한 정부의 후원, 그것도 개인의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했던 독재정권의 후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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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먼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반대했지만, 정작 그의 실험에는 항상 국가의 폭력(경찰과 군대)이 따랐다. 그는 완전한 자유를 이야기했지만, 그가 추구한 '자유사회'에서 민준들은 굶어죽을 자유와 고문다알 자유만 누릴 뿐이다. 왼쪽은 피노체트, 오른쪽은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먼과 시카고 보이스
프리드먼과 그의 제자들인 ‘시카고 학파(일명 시카고보이스)’2)를 유명하게 만든 건 칠레의 피노체트였다.
시카고 학파란 프리드먼의 스승격인 하이에크 등이 주축을 이룬, 시카고 대학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경제학자들을 일컫는다. 시카고 대학은 석유왕 록펠러가 설립한 학교로 자본의 이익을 지키고 대변하는 경제 학설을 연구•생산•유통해왔다. 시카고 대학의 이러한 활동은 미국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수많은 해외 유학생을 받아들여 그들을 미국식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훈련, 무장시키고 본국으로 돌아간 그들이 그 나라의 경제 관료로 자리 잡게 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시카고보이스’들이다.
칠레에서의 프리드먼과 시카고보이스들의 활약상이 대표적이다. 피노체트 정권이 선거로 당선된 아옌데 정권을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로 전복시킨 것은 1973년이다. 아옌데의 당선은 자신의 ‘텃밭’처럼 경영해 왔던 남미에서 미국의 지위를 크게 위협했다. 사실 미국의 제국주의 헤게모니는 1960년대 들어와서 흔들리고 있었다. 1961년 쿠바혁명 이후 라틴아메리카는 반미, 반제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베트남전쟁 역시 미국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1970년 인민연합의 아옌데 후보가 당선되고 그가 추진한 일련의 진보적 조치들로 인해 가장 커다란 피해를 본 것은 누구보다 미국이었고 가장 커다란 혜택은 본 것은 민중들이었다. 아옌데 정부는 미국의 초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구리광산을 국유화하고 독점자본이 작악하고 있던 화학, 전자 산업 등을 정부에 귀속시켰다. 미국 CIA의 거점이었던 미국 국제전신전화회사(ITT) 역시 그 대상이 되었다. 반면 학생들의 진학률은 매년 18% 이상 증가했고,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급격히 증가했다. 칠레의 국내총생산(GDP)은 1970년 한해에만 8.5%가 성장했고 실업률은 7.2%에서 3.9%로 급락했다.
정권을 찬탈한 피노체트 정권은 인민연합 정권의 진보적 정책을 와해시키고 미국 주도의 경제를 재건할 필요가 있었다.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 학파 역시 자신들의 숙적인 케인즈주의를 물리치고 자신들의 학문적 영토를 확장할 이해관계가 있었다.
프리드먼은 칠레를 방문했고 그가 머문 동안 쿠데타군이 만든 군사평의회는 이전 정권에 포진했던 엘리트들을 살해 또는 추방하고 유학파(시카고보이스)들을 전면 기용했다. 프리드먼의 아이들은 ‘모국’에서 ‘스승’에게서 배운 대로 칠레 경제를 급격하게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했다. 물론 미 대사관과 CIA의 전격적인 지원이 뒤따랐다.

 

해운대-1.jpg

'쓰나미'는 자연이 만든 재앙이지만, 신자유주의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재앙이다. 그 재앙의 결과 99%의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초토화시킨 폐허위에 1% 사람들이 구축하는 '부의 제국'이 세워지고 있다. 사진은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


카트리나 폐허 위에 신자유주의 새집 지어
피노체트의 집권기에 약 3,200여명이 살해됐으며, 실종자도 1,200여명에 달한다. 수만 명이 투옥되었고 최소 20만 명이 정치적 망명을 선택했다.
프리드먼의 조언에 따라 피노체트는 가격자유화, 임금규제, 환율의 평가절하, 공공지출의 삭감 등을 뼈대로 하는 경제개혁을 단행했고 금융•자본시장을 자유화(개방화)했으며,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프리드먼주의 개혁은 칠레 경제를 급속히 성장시켰다. 미국은 피노체트 집권기동안 칠레 경제가 아옌데 정부 시절보다 300배 이상 성장했다며 극찬했고 프리드먼 역시 ‘세계경제의 기적’이라며 침을 튀겼다.
반면 칠레 경제의 성장 이면은 비참했다. 사회 양극화는 극적으로 심화되었고, 공공서비스가 붕괴되었으며 실업 및 자살률이 급증했다. 수많은 기업들이 미국계 자본에 헐값으로 팔려나갔다.
개혁의 초기 몇 년간 급성장하던 칠레 경제는 곧 파산상태에 빠졌다. 1981년 칠레의 주요 은행과 기업들이 줄파산하면서 급기야 이듬해에는 -14%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IMF에 손을 벌리게 된다.
칠레를 비롯해 남미 전역은 물론 소련, 중국 등에서 행해진 시카고보이스들의 경제적 실험을 폭로한 <쇼크 독트린>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이들이 만든 체제를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이들은 자유와 민주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는 ‘재난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쇼크(충격과 공포)를 통해 백지상태로 만든 뒤 그 위에 자신들의 그림(시장주의, 신자유주의)을 맘껏 그려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근에 와서는 허리케인같은 자연적 재앙도 신자유주의 체제를 이식하는데 있어 ‘쇼크 요법’의 도구로 사용한다. 사실 허리케인처럼 모든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백지로 만들어주는 쇼크가 어디에 있겠는가.
뉴올리언스가 카트리나로 풍비박산이 났을 때, 딕 체니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진작부터 뉴올리언스의 공립학교 등 공공부문 시스템을 허물고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막혀 있었던 그들에게 허리케인은 ‘완벽한 폐허’를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 뉴올리언스 시민들의 비탄에 찬 목소리는 신자유주의의 불도저 소리에 묻혀 버렸다. 쓰나미가 초토화시킨 스리랑카, 태국, 몰디브 등의 지역에서는 시카고보이스들의 주장대로 초호화 레저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다. 대대로 그곳에서 생계를 이어오던 이재민들은 집과 땅조차 빼앗긴 채 그 레저시설의 비정규 심부름꾼으로 채용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1)시장주의 경제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저서로 프리드먼은 ‘아담 스미스의 부활’이라는 반열에 오르게 된다.
2) 최근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위원회’의 경제·금융·법제 분야 위원을 맡은 서울대 경제학과 이지순 교수, 이명박 정부 1기 때 청와대 국정기획수석(현 미래기획위원장)을 맡았던 곽승준 고려대 교수, 조하연 연세대 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이 한국의 대표적인 시카고보이스들이다. 이외에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재계에도 시카고보이스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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