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공포, 화학물질의 습격

[35호]

어린이집 90%, 유해화학물질 검출
이지현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 팀장 |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0.04.26 16:22:59
질병과 사망에 대비하라며 텔레비전에서 보험 광고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 원인 1위는 무엇일까요? 바로 ‘암’입니다. 성인 3명 중 1명은 암이라고 합니다.”라며 말이다. 왜 우리 국민은, 아니 전 세계의 많은 지구인들은 ‘암’이라는 질병에 걸리는 걸까?
흔히 사람들은 암에 걸리는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담배를 많이 피워 ‘폐암’에 걸리고, 섬유질이 풍부하지 않은 음식이나 육식을 많이 하는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대장암’에 걸리고… 이도 저도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혹은 암에 잘 걸리는 유전적 소인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암을 이기기 위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술 담배를 멀리하며 식습관을 바르게 하는 등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라고 한다. 혹시라도 암에 걸렸을지 모르니 ‘조기 발견’을 위해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으라고도 한다. 과연 이렇게만 하면 우리는 암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비누, 샴푸, 화장품… 모두 화학물질
모두가 앞서 밝힌 생활수칙대로 살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암에 걸리지 않을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발암원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을까? 밥 먹고, 씻고, 옷 입고, 차 타고 출근하는 등 일상생활 속에서 말이다.
특별히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직업이 아닌 이상, 내가 생활하면서 위험한 화학물질과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긴 어렵다. 하지만 세수할 때 쓰는 비누, 샴푸, 세정제, 광택제, 화장품과 각종 미용 용품들, 플라스틱 그릇 및 포장재, 합성섬유로 만든 옷, 가공식품의 식품첨가물에 이르기까지 생활 주변 대부분의 것들이 화학물질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인은 이런 화학물질을 하루에만 약 1,500~2,000여 종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한해 국민적 공포를 불러온 물질 중 ‘석면’이 있다. 석면은 화학적으로 합성된 물질은 아니지만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이 1급 발암물질이 아기에게 바르는 베이비파우더, 뉴타운 재개발 현장, 지하철역 리모델링 공사 현장, 시멘트, 소금 등에서 검출되었다. 작은 노출에도 폐암이나 악성중피종과 같은 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것이다.
또 환경부가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을 조사했더니 조사 대상 어린이집 90%에서 화학물질이 위험한 수준으로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이중 몇 곳은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인은 위생을 위한 소독이었다. 값싸고 효과 좋은 살충제에서 다량의 화학물질이 나왔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하루 종일 뒹굴며 생활하는 공간에서까지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이 검출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먹을거리는 늘 불안하다. 미량으로 남아있는 농약이나 제초제, 살충제 등도 불안하지만 대부분의 식당에서 사용하는 인공조미료 MSG가 그렇고, 색소나 보존제도 위험하다. 햄을 만들 때 넣는 보존제인 아질산나트륨은 발암물질이다. 이런 식품첨가물은 정부가 사용을 허가한 것만 600종이 넘는다. 거기다 바닐라향과 같이 향료를 만드는데 쓰이는 화학물질은 등록해 관리하는데도 그 종류가 2,500여 종에 이른다.
환경호르몬은 농약이나 살충제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자동차 매연에 가장 많단다. 유기농을 먹으며 모기장을 치고 자도, 도로변으로 걸어 다니면 말짱 헛수고다. 무심코 피는 담배 하나에도 삼천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화학물질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어느 공단 지역의 화공약품공장 폭발 사고나 미나마타병(일본 미나마타시에서 발생한 수은중독 증후군) 처럼화학물질에 고농도로 노출되는 사고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사고들은 대부분 안전관리가 강화되어 고의가 아닌 다음에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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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T는 뛰어난 살충효과로 194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사용되었다. 유해성이 입증되기 전에는 머릿니를 잡기 위해서 사람에게 직접 살포하기도 했지만 70년대 이후 사용이 중지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DDT 살포로 인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호수의 물고기 등에서 높은 수준의 DDT가 검출되고 있다.

‘안전’보다 ‘이익’이 우선인 관리기준
그렇다면 아주 적은 양이지만 하루에 1,500~2,000여 가지의 복합적인 화학물질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일상은 안전할까? 일상에서 만나는 화학물질들은  안심하고 사용해도 될까?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관리하는 정부나 법이 안전하다고 보증한 것조차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옛날에 머릿니를 잡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뿌렸던 디디티(DDT)는 한참 후에야 발암물질로 밝혀져 사용이 금지되었다. 농약 중 상당수는 환경호르몬 물질이다. ‘포도 맛’ 사탕에 많이 쓰이던 합성색소인 적색 2호는 많은 사회적 논란 끝에 발암 가능성을 이유로 2007년부터 사용이 금지되었다. 젖병이나 물병을 만들 때 쓰는 플라스틱 종류인 폴리카보네이트는 가소제인 비스페놀-A라는 물질을 사용한다. 끊임없이 안전성 논란을 불러오던 이 물질도 프랑스, 캐나다, 미국 등에서 잇달아 발암, 환경호르몬을 발생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사용주의’ 경고가 내려졌다.
이처럼 법으로 정한 물질이라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안전한 화학물질은 없다. 왜냐하면 화학물질의 독성을 인정하더라도 사용했을 때의 이익과 위해성으로 인한 손실을 사회적으로 따지기 때문이다. 위해성이 있더라도 사용하는 것이 사회적 이익이라고 판단되면 적절한(?) ‘안전관리 기준’을 만들어 합법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예전에는 독성의 정도에 따라서만 사용여부가 판단되었지만, 최근에는 독성 뿐 아니라 미량이라도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주목하는 등 보다 엄격해 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추적, 평가할 수 있는 과학의 발전도 있었겠지만, 우리들의 안전과 생태계의 건강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 더 큰 이유다. 나아가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의 사회·환경적 부담 등이 이를 사용했을 경우의 경제적 이익보다 더 큰 손실로 평가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한국, 유럽 수출제품만 관리기준 높여
화학물질 관리제도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리치(REACH)’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07년부터 새로운 화학물질 관리제도인 리치를 도입했다. 리치는 제품에 사용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목록과 안전성 평가 자료를 보고하게 한 후, 이중 발암, 생식독성, 유전독성, 생태계 잔류 물질 등은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여 이에 속하는 물질들은 심사를 거쳐 부득이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사용을 허가한다. 만약 이 물질 중 대체물질이 개발되어 있다면 이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 제도는 일상의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던 고위험군 화학물질을 없앨 수 있는 선진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제도에도 만족하지 않고 지난 2008년 9월 ‘즉각 대체되어야 하는 유해물질 목록(SIN List)’을 발표했다. 당장 다른 물질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고위험군 물질은 무려 267종이나 되었다. 나아가 이들은 이런 유해화학물질을 금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금지와 대체에 찬성하는 기업들을 조직, 실제로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도록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니에릭슨, 델, 노키아 같은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리치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화학물질 관리제도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유럽에 수출하는 제품에 한할 뿐, 국내에는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하다. 일례로 국제암연구소에서 규정한 발암물질은 400종 이상이고 이 중 직업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물질은 200종 가까이 되지만, 정부가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56종에 불과하다.
한국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영국, 프랑스에서는 1년에 1,000명 정도가 직업성 암으로 산재 인정을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1년에 겨우 20~30명에 불과하다. 발암물질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그 물질을 사용하는 당사자는 발암물질인지 모르는 것이 다반사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직업성 암으로 판정받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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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유럽의회 의원(MEP Members of European Parliament)들에게 REACH 법안에 투표할 것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당장 내 책상 위부터 살펴보자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한국에서도 화학물질, 특히 치명적인 발암물질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환경운동연합, 여성환경연대 등 환경단체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노동환경건강연구소를 비롯한 민간 연구소, 변호사, 의사 등의 전문가 그룹이 모두 모였다. 이 모임은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인 발암물질에 대해 감시하고, 이의 위험성을 노동자, 시민에게 알리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암에 대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지만, ‘조기발견, 조기치료’만을 목적으로 하는 한 발암률을 줄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 수많은 발암물질은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는 노동 환경과 우리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발암물질의 목록을 만들고, 가장 먼저 감시하고 없애야 할 물질의 리스트를 선정, 이들을 줄여나가기 위한 운동을 전개한다고 한다. 수백 개의 발암물질이 우리 집, 내 밥상, 작업 공간 등 어디에 있는지 알고, 이를 피해나가기 위한 생활방법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개인적인 노력을 넘어 사회 전체가 암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 물질을 감시하고 없애나가는 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주요한 운동의 방향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고, 건강검진을 받고, 운동을 하는 등 개인적으로 기울이는 노력만큼, 유해한 화학물질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건강한 미래는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내 책상 위의 화학물질부터 다시 한 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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