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회식과 남동구 원탁회의, 진보구청장의 첫 행보

[52호]

[배진교의 21세기 목민심서]
정리 정송이 | ssongn@hanmail.net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1.09.12 22:56:57

편집자 주>목민심서(牧民心書)는 다산 정약용이 1818~1819년에 저술한 ‘올바른 수령의 지침서’다. 수도권에서 차근차근 만들어지고 있는 진보세상. 그 감동과 기쁨, 아픔과 보람의 고된 여정을 한 걸음 한 걸음 기록하는 것이야 말로 ‘진보정치의 내일’을 쌓아가는 것이다. 수도권 최초의 진보구청장이 말하는 진보구정의 사연과 속내, 그 후일담인 ‘배진교의 21세기 목민심서’. 1818년 다산 선생이 지은 목민심서의 21세기 판이라 할 수 있다. 

배진교.jpg

안녕하세요? 배진교입니다.
여름 휴가들 재미있게 다녀오셨습니까? 저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년에는 구정(區政)이 너무 바빠 여름휴가를 가지 못해서인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더군요. 오랜만에 지인들도 만나 봤습니다. 몇 년 전부터 알게 된, 친 형님 같은 분을 찾아뵈었어요. 공직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횟집을 하고 있는데, 술을 굉장히 좋아하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횟집에서는 술을 팔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함께 술 한 잔을 기울이던 중 그 형님은 작년 제 취임식을 회상했습니다. “30-40분에 끝냈지, 아마? 다른 구청장들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아무튼 그 날 저녁에 난 좀 감동받았어. 전 구청장 비서진하고 새 비서진, 모두 데리고 와서 우리 횟집에서 했잖아요, 첫 회식을. 그럴 생각은 어떻게 했나?”
취임식이 있었던 날,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는데 전 구청장의 비서진이 생각났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작년 지방선거 3개원 전에 전 구청장이 퇴임하여 구청장 자리는 공석이었거든요. 전 비서진을 마지막으로 챙길 사람이 마땅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것을 횟집 형님이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취임식 날이 떠오르더군요. 
작년 지방선거를 통해 진보진영의 구청장들이 많이 당선됐죠. 취임식을 이전 정치인들과 다르게, 진보는 진보답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화환대신 쌀로 받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짧게만 했습니다. 취임식에는 축하해주러 오는 건데 상당히 지루하거든요. 그래서 일차적으로 의전들을 다 없앴습니다. 
한편으로는 권위주의를 없애고자 노력했습니다. 보통은 구청장 부부가 취임식 내내 단상에 준비된 좌석에 앉아 있는데 저는 다른 초대자, 구민들과 함께 객석에 앉아 있었어요. 취임사도 짧게 했습니다. 행사장 입구에 방명록대신 ‘구청장에게 바란다’라는 의견함을 설치해 놔서 제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넣게 했지요. 
왜 이렇게 간소하게 했냐고요? 이벤트를 해서 재미있고 파격적인 것은 좋은데 ‘권위주위를 없애려다가 권위 자체를 희화화시키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평소에 소중하고 중요한 분들도 초대해서 저에겐 그 자리가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취임식 후 첫 방문지는 노인회였습니다. 이전 구청장들은 장애인단체를 제일 먼저 갔다고 하더라고요. 장애인분들, 당연히 만나야죠. 제 생각에는 순서가 바뀐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거나, 상을 타게 되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제일 먼저 알리나요? “엄마, 나 일등 먹었어”라며 부모님을 찾지 않나요? 구청장이라는 공직에 처음 들어서서 가장 먼저 찾아봐야 하는 분들은 지역의 어르신들이라 생각했습니다. 노인회를 찾아 가서 “젊은 자식이 출세를 하면 가장 먼저 부모님을 찾아 뵙고 인사드리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어르신들께 인사하러 왔습니다”라면서 큰 절 드렸지요. 노인회분들이 놀라셨나봐요. 원래 그분들은 저를 지지하기는 커녕 반대하는 쪽에 가까운 분들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노인회 간부님들이 “구청장이 예의바르고 가정교육 잘 받은 젊은이더라”며 저를 칭찬하고 다녀서 저는 사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는 동을 순회했습니다. 연1회 동을 방문해서 동민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죠. 원래 주민이 준비된 질문을 하면 구청장이 준비된 답을 해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대부분 구청 직원들이 답을 하고 구청장은 인사말 정도 간단히 하는 자리였답니다.
저는 이런 동 순회에서 권위주의를 없애고 싶었습니다. 짜여진 각본이 아니라 구민들의 살아 있고 숨쉬는 걱정과 요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구청 공무원들과 봉고차를 타고 순회를 시작했죠. 
우리 남동구는 총 19개 동이 있는데요. 동마다 돌아다니며 제가 직접 사회를 보면서 동 순회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자리배치도 이전과 달리 했습니다. 저를 중심으로 둘러싸는 장방형, 사각형으로 책상과 의자를 배치했습니다. 원탁회의처럼요. 주민들이 처음에는 쭈뼛거리다가 조금 지나니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분위기 상 ‘내 요구를 들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나중에 추려봤더니 동마다 15개 정도씩, 총 290여 개의 요구사항이 나왔습니다. 
실현이 안 될 것 같은 요구에 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정쩡하게 ‘검토 하겠다’는 표현는 정중한 거절, 거부의 뜻입니다. 그러나 주민의 입장에서는 일말의 희망을 걸게 되지요. 애매한 표현보다는 안 되는 건 왜 안 되는지 분명하게 얘길 했습니다. 거짓말로 주민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사기’니까요.
이전까지 주민들의 의견은 ‘구청이 우리 얘길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들으면 뭐 하냐,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된다는 답까지 해 달라’라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간담회가 끝난 후에 주민들의 반응을 들어보니 ‘내가 할 얘기는 다 했다. 시원하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주민의 입장에서는 해결여부를 떠나서 구청장과의 의사소통 자체가 만족스러웠던 거에요. 
저는 여기까지도 소중한 소통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선 안 되죠. 정책적 의제들을 놓고 주민들과 토론하고 의논하는 것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수 백, 수 천 명의 주민들과 운동장에 둘러 앉아 밤새 토론하는 꿈을 꾸기도 한답니다.
꿈같지요? 아직은 꿈입니다만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봅니다. 제가 구청장이 된 것이나 진보진영이 정계로 진출한 것이나 시작할 때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꿈을 꾼 사람들이 구청장, 시의원, 도의원의 자리에 있고요. 저처럼 말입니다.
다음에는 무슨 얘길 나눌까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다음 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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