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라는 손가락 말고 달을 봐야

[53호]

[시사칼럼] 안철수, 박원순을 타고 온 열망을 이해하려면
이춘자 발행인 | nodmz@hanmail.net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1.10.13 10: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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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 대학원 원장이 나타나자 모든 정당들이 낡은 것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라고 했고 한나라당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소인배 정치는 대인배의 감동 정치를 이길 수 없다”며 자아비판을 하면서도 “그것은 지나친 매도”라며 서로 언성을 높였다. 민주당은 “안철수 돌풍으로 정당이 외면을 당하고 정당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버림받다시피 하고 있다”며 자기반성과 냉혹한 성찰을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발 빠른 출판계에서는 ‘안철수 대통령’이라는 제목을 단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안철수 본인의 말처럼 “정치를 한 번도 안하고 출마의사도 표명하지 않았는데 (나로 인해) 양쪽이 지각변동으로 흔들린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필자가 더 놀라운 것은 안철수 현상, 안철수 돌풍, 안철수 신드롬이라며 전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는 아무런 언급도 논평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9월 1일 <오마이뉴스>가 안 원장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설을 보도한 이후, 그는 9월 4일 인터뷰를 통해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 세력이며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며 반한나라당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틀 후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만나 왜 서울 시장이 되고 싶은지, 서울 시장이 돼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등 의지와 포부를 듣고 20분 만에 그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제가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박 변호사님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변호사님의 의지가 얼마나 굳건한 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50%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5%에게 아무런 조건 없는 양보를 했다.


이런 감동이 한 달이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다. YTN이 <중앙일보>, 동아시아연구원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안 원장의 내년 대선 가상 대결에서는 43.7%대 42.8%로 안 원장의 바람이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고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5일,26일 이틀 간 시행한 여론 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와 안 원장이 45.1% 대 48.4%로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안철수 현상은 대중의 어떤 요구를 드러내고 있는 걸까? 먼저 주위 사람들과 그 지인들 28명에게 다섯 가지 질문을 해 보았다. 다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서울 거주자로, 9급 공무원, 3년차 교사, 웹디자이너, 시민단체 활동가, 컨설팅 회사 직장인, 텔레마케터, 피부관리사, 간호사, 네일아트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의 소유자들이었다. 정식 조사는 아닐지라도 의문에 약간의 힌트가 되어줄 것 같았다.


안철수를 알게 된 계기는 백신의 무료배포로 알고 있었으나 (6명) 언론과 ‘무릎팍 도사’의 출연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15명)이 다수였으며 대체로 호감을 가지고(14명) 있었다. 그 이유는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 재능을 나눌 줄 아는 사람, 도덕적 성향, 절제, 탐구 의지 등을 꼽았다. 소수였지만 기업인이라는 점에서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 생각나서 별로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실망 때문에 안철수 의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는 분석은 다수(15명)가 했으며 정치입문에 대해서는 다수가 기대감을 나타냈다.(12명) 한편 반대 의견 (7명)도 제기되었다. 기존 정치인에게 휘둘려 허수아비가 되거나 인기에 연연해 튀는 행정가가 될 수도 있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 정치권 밖에서 샘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리라는 의견이었다.


전문가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MB식 토건주의 기업가에게 신물을 느끼면서도 변화를 위해 비판과 투쟁을 앞세우는 쪽보다 사회 공헌적 이미지에 훨씬 편안함을 느끼는 이 시대 청년들의 바람을 반영한 것”으로 보았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안철수 현상에 대해 “MB의 독특한 통치 스타일 때문이기는 하지만 더 강조된 점도 있지만 해방이후 이렇게 영웅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온 사람은 안철수뿐이다. ‘안철수 대통령’을 상상하자.”고 했다.


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기업인으로 경제적인 성공을 했다는 점이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으며 절망의 청춘들에게 대안적인 롤 모델로 작용하고 있다, 여전히 성공신화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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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엔 있고 진보엔 없는 것


이제 진보진영은 안철수 현상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


첫째는 대등하게 소통하자는 것이다.
5월 22일부터 9월 15일까지 100일간 전국 27개 지역에서 4만 3996명이 참가한 ‘청춘 콘서트’는 안철수와 20~30대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청춘 콘서트는 등록금, 실업, 고물가, 자살 등 이 시대 청춘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상황과 사건이 줄을 잇는 시기에 청년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더구나 전국적으로, 지방을 중심으로 진행했다는 것은 수도권 집중의 시대에 더 약자인 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철수와 동행했던 시골의사 박경철은 콘서트 때마다 “기성세대로서 녹록치 않은 환경을 물려준 점이 못내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삐뚤어진 시대에서 사회적 약자가 된 청년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고 싶은 진정성이 청년들을 움직인 것이다. 콘서트 프로그램도 일방적인 강연회로 진행되지 않았다. 3,4명이 대화를 하면서 청중들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콘서트를 진행한다.


반값등록금 약속을 지키라고 몇 년을 외쳐도 등록금은 인상되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그냥 살게 해 달라고 애원해도 불도저와 용역 깡패로 밀어 버리고, 4대강 개발은 너무 큰 공사이니 다각도로 논의하고 천천히 여론을 수렴하자고 해도 밀어붙이는 수직적 권력 앞에서 소셜 네트워크와 주위의 교류하는 사람들을 멘토라고 부르는 그의 모습에서 ‘함께 이 어려움을 나누고 헤쳐 가자는’ 동료의식을 공감하는 것이다.
 
둘째는 성취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는 남보다 더 잘 살고 남보다 더 성공해야 한다는 경쟁의 논리에 강하게 물들어 있다. 하지만 안철수가 의사라는 직업을 툭 버리고 컴퓨터를 치료하는 백신을 만들고 회사를 경영했고 그 백신을 무료로 사람들과 공유했으며 어느 날 가지고 있던 60억원의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다시 과학자의 길로 간 여정을 보며 대중이 환호하는 것은 밑바닥 정서에 나눔과 성취에 대한 욕구가 있음을 말해준다. 돈이나 권력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 자신이 잘 “쓰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고 몰두하고 싶은 대중의 욕구가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권력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고 대기업과 중소, 영세 기업과의 불공정 거래 속에서 노동자 간의 격차도 심해질 뿐만 아니라 창업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대기업은 무소불위의 힘으로 다가오고 있다. 대기업 위주의 시장정책과 승자독식, 기득권과 반칙의 불공정이 사회 전반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세습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하고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일자리를 갖고 가정을 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희망을 가직 수가 없다. 


그가 삼성동물원, 엘지동물원 등으로 표현하며 대기업의 약탈적 행위를 고발하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 구성을 제시한 것은 한 줄기 희망이었다. 더구나  배의 균등을 통해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고, 양적 성장에 걸맞는 질적 성장을 이뤄내기 위한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와 수평적 네트워크의 대안모델을 제시하면서 기업경영을 통해 이를 구현해보였다.
 
셋째는 도덕적 믿음이 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박 변호사와 안 원장이 단일화를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기자회견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트윗을 통해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적이라는 감상을 올리기도 했다. 안철수는 “박원순 변호사님을 만나 그 분의 뜻이 확고하다면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사전에 말했고 아주 깔끔하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혔다. 50%의 지지율이 나오는 사람이 5%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양보하는 보기 힘든 이 장면 때문에 지금도 안철수는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지 모른다. 권력형 부정부패가 밝혀지는 과정은 항상 이런 순서를 갖는다. 절대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 (만난 증거를 들이대면) 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명백한 증거를 여러 개 들이대면) 아, 만난 적은 있지만 금품을 받지는 않았다 - 결국 수억의 금품이 오가는 관계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단일화를 하기로 결정해 놓고도 그 방법을 둘러싸고 지루한 공방전을 벌인다. 합리적인 방안일지라도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억지를 부린다. 지난 4월의 김해 을 보궐 선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결국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후보 단일화를 이뤘음에도 패배하고 말았다.


이러한 기존 정치권 풍토에서 안 원장의 양보는 신선함을 넘어 환호의 대상이 된 것이다.
 

탈 정당 후보를 향한 우려들

 

안철수 현상은 20~30대 젊은이들의 밑바닥 정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위에 든 긍정적인 현실 외에 우려스러운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주의란 사회 갈등에 기초를 둔 정치체제이며, 갈등하는 시민 집단들을 대신해서 정당과 정치가들이 ‘공익’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두고 정치의 장에서 싸우는 것 이상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들이 제대로 싸워줘야 시민적 자유와 평등화의 효과가 커진다”며 지나친 탈 정당화된 시민후보를 경계하는 시각(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이다. 또 “선거는 정체(政體)의 구성 말고도 그밖에 나름대로의 효용이 있고 선거 정치를 통해 서로 어울려 부딪히고 갈등하며, 또 타협하고 할 때, 마치 강물이나 바닷가의 돌이 둥글듯이 정치인들이 민주적으로 원숙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국회(의회)란 무대에서의 정책토론의 광장을 경험하면서 어떻든 대국적인, 전국적인 경륜도 형성해나갈 수도 있다. 그런 선거정치를 적당기간 거치지 않고 정치지도자가 될 때 비민주적, 또는 독선적인 인물이 될 확률이 높을 것”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이라는 우려도 있다.


좀 더 다른 각도의 우려도 있다. “이념과 이익에 호소하는 진보정치의 지도자들은 평생을 바쳐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고 정치판에서 새 흐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대중은 이들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주류 미디어가 이들의 헌신과 노력을 폄하하거나 묵살해버리고 안 원장 같은 새로운 스타에게 초점을 맞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지만 안철수 바람은 진보정치, 노동정치의 주변화와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다.


진보정치가 미래지향적 대안을 내놓으며 이목을 끌기보다는 과거의 노선에 얽매여 분열하고 대립하는 모습만 보여주자,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정치 전체에 불만을 느낀 대중은 그 출구를 진보정치에서 찾지 않고 안철수라는 새 아이콘에서 찾은 셈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안철수가 나타나자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까지 모든 기존 정당은 낡은 것이 되어버리는 듯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분위기에 눌려서 각 정당들은 성찰의 목소리를 내는 듯 했으나 서울 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다시금 구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당내 경선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채 후보를 결정하고 보여주기 식의 홍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민주당은 자기 후보를 단일후보로 만들기 위해 박원순 후보의 지난 행동을 과하게 비판하거나 재산, 자녀의 유학 문제 등을 들추며 비난에 가까운 공격을 하고 있다. 특히 단일화 방안에 있어서는 민주당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제시했다. 여론조사 30%, TV토론 후 배심원 투표, 국민참여경선 40%등을 내용으로 하는 1차 합의에서부터 국민참여경선 방식이 박원순 후보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강했으나 박원순 측은 받아들였다. 마지막에 진통을 겪은 국민참여경선 선거인 명부 공개에 대해서도 “정책 대결이 중요하다. 방안은 그대로 받겠다”고 했다. 안철수의 양보를 받은 그 마음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박원순 후보의 행보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중이 바라는 대로 약속한 것을 지키고 대의를 위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정치를 해 보이는 모습은 일단은 아름다워 보인다.
 
이제 진정 안철수 현상에서 무엇을 배울지 진보진영이 성찰하고 실천할 때이다.
글의 서두에서 진보양당만이 안철수 현상에 대한 공식, 비공식 언급이 거의 없었음을 지적했다. 9월 한 달 동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로 양당 당원과 노동 현장까지도 나뉘어져서 에너지만 썼을 뿐이다.


진정 대중이 원하는 평등한 소통과 나눔의 문화와 믿음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정당과 노조라는 기존의 틀을 어떻게 변화시켜 대중의 참여를 보장할 것인지 자신을 버려서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 안철수 현상으로 드러난 대중의 정치적 관심이 휘발되지 않고 모아질 것이다.
지난 2008년 촛불의 함성과 열망이 어디에도 담기지 못하고 휘발되어진 아픔이 있지 않은가?
 
"조직 없이는 민주정치를 생각할 수 없다. 조직만이 대중에 일관성을 갖게 할 것이다."
- 사회학자 로버트 미셀즈가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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