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땡볕이 가시지 않은 8월 27일. 만수1동에서 ‘참여예산 한마당’이라는 이름의 주민총회가 개최되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주민들이 많이 올까?’라는 우려를 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도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행사 시작 전부터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한 주민들은 행사가 시작될 무렵에는 500여명으로 불어났다. 그 자리에 참석한 주민들은 후일에 “동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이들이 벌이는 태권도 시범 등의 다양한 공연도 보고 살기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 요구안에 투표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전했다.
한 동의 주민들이 500여명이나 모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주민참여예산제’라는 생소한 이름으로는 더더욱 말이다. 때문에 남동구에 있는 19개동 모두가 이렇게 주민총회 형식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대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모색하기로 했다. 논현동이 이런 예다. 논현동은 신도심으로서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주민총회를 하지 못한다면 주민투표의 형식으로라도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아파트 입구마다 투표소를 설치, 만20세 이상 유권자들에게 2개의 투표권을 부여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500여명이 투표에 참여,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주민참여예산제란?
주민참여예산제는 이름 그대로 주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구의 예산편성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자치에는 주민자치, 단체자치가 있다. 그동안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주민이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에 그쳤다. 이미 편성되어 집행된 예산에 대해 평가를 하는 식이었다. 이것도 주민이 스스로 나서서 행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미 집행이 끝난 시점에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 다소 소극적 참여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구청장이 되기 전까지는 인천연대 남동지부장을 하면서 시민운동을 했다. 이런 시민단체 활동이라는 것이 어떤 문제가 발생한 이후 지적하거나 재발방지를 하는 정도의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시민운동은 지역주민을 그 지역의 주인으로 세워 직접 참여하게 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다. 그러나 행정기관 밖에 있는 단체에서 직접 주도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
결국 집행부가 주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쿨하게’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좀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으로 주민이 구정에 참여하려면 예산 편성과정에도 참여하여 지역경영을 직접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단체자치에 해당하는 예산 편성권을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해서 함께 편성하는 것이 주민참여예산제이다.
‘주민참여예산제 연구회’ 50여 차례 주민교육
이를 실행하기 위해 우리 구는 근 1년을 준비했다. 2010년 12월에 남동구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를 제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1년 3월에는 조례 시행규칙을 제정했고 4월에는 ‘주민참여예산제 연구회’를 구성했다. 조례 및 시행규칙을 제정한 것은 물론, 상위법이 있어서 주민참여예산제를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는 있지만 우리 구의 실정에 맞게 시행하려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했다. 주민이 직접 참여해야하는 만큼 주민들의 예산 편성 및 직접 참여에 대한 의식을 높이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연구회를 만든 것이다.
학자 3인, 시민단체회원 5인, 공무원2인, 총 10인으로 구성된 이 연구회의 활약은 구성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19개동의 동사무소를 순회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성당,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 등 총 50여회의 주민 교육을 실시했다. 어떤 동은 30여명이, 어떤 동은 70여명이 오기도 하여 가는 곳마다 평균 5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집계된다. 동영상과 강연으로 구성된 40분 정도의 교육을 이수한 주민들은 쉽게 이해하고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 주민참여예산제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개선점, 요구안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주민들뿐만 아니라 공무원에게까지 이런 교육과 홍보 활동을 한 것은 이전의 혹은 다른 구의 ‘주민참여예산제’와 달라서다.
남동구만의 특성 ‘통으로 가자’
민선 4기, 전 구청장 시절에는 ‘주민참여예산제’가 행정안전부의 권고사항이었다. 따라서 시행하는 곳도 적었다. 그래서 실패냐, 성공이냐? 그런 것을 따질 것도 없이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선 5기 들어서는 지방자치와 주민참여가 주요한 사항이 되어 많은 지자체장들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고 행정안전부의 지침이기도 하여 ‘주민참여예산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각기 자신의 지역에 맞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가장 일반적인 모델은 동마다 이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일정 정도의 예산이 분배 책정, 시행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동마다 얼마씩 떼어주고 ‘알아서 써라’는 식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구의 경우, 동으로 보내는 예산이 얼마 안 돼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통으로 가자’고 했다.
일단, 동별로 뽑힌 10명, 총 19개동의 190명 지역위원이 각 동마다 3개의 요구안을 갖고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모여 각 분과별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 분과는 참여자치, 재정경제, 복지사회, 환경문화, 도시관리 등 5개가 있다. 논의안에는 19개동 3개씩 60개 정도의 주민요구안과 더불어 동별 사업이 아닌 구청의 사업도 포함된다. 지역위원들이 구청의 사업과 동별 요구안을 모두 검토하여 구정 전반을 결정하는 구조다. 구정 전체를 주민들의 손에 맡겨 주민들의 진정한 참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할말 많았던 주민 ‘주민참여예산 지역위원’으로
주민들의 진정한 참여가 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조건이 필요했다. 각 동별 10명의 지역위원의 구성이다. 아무런 선발기준이 없다면 동네에서 목소리가 큰 기존의 유지, 자생단체 회원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해 ‘주민자치위원회’와 다를 바가 없어질 가능성이 컸다. 평소에 자신의 동네에 관심이 많지만 밥벌이로 시간이 없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던 주민들의 참여가 필요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연령별, 성별, 직업군별 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에 부합하는 주민들이 자원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해서 어떤 동은 가까스로 10명을 채우기도 하고 어떤 동은 2: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각 동마다 뽑힌 지역위원이 지역 주민들의 요구들을 수집한다. 당연히 많을 것이다. 여기서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각 동별로 주민총회, 주민투표, 지역위원회의 등을 하게 된다. 주민들이 많이 꼽은 순으로 3개의 요구안을 선정하고 이것을 갖고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서 최종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각 동마다 올라온 요구안 중 눈에 띄는 것은 논현고잔동의 장애인쉼터 설립운영에 대한 건이다. 논현고잔동의 휴먼시아 아파트는 장애인들이 많이 산다. “아파트 단지 내에 노인정 등 복지시설이 있으나 장애인들의 현실적 여건상 비장애인들과 같이 노인정에서 어울려 지내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 장애인 쉼터를 요구한 것이다.
이외에도 만수1동의 개구리주차 허가건과 만수3동의 만월산 내 정자설치 등의 동별 요구안과 구청 사업을 포함하여 총 150여건의 요구안이 민관협의회에 제출되고 이중 110여건이 예산편성에 반영되어 시행을 기다리고 있다.
주민의 힘을 확인하다
진보정치인으로서 지역주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세우는 일이 최우선임을 잊지 않고 산다. 그에 주민참여예산제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있다. 무엇보다 실무를 하는 구청 공무원들의 노고에, 통장님들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겨우 1년.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시험단계라서 뭐라 평가할 것도 없지만 주민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점에 놀랐다. 동네끼리 이해가 부딪히는 부분은 서로 토론과 합의를 통해 자체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보면서 2012년을 전망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시점에서 가능하고 유의미한 것을 포착하여 2012년에는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연구회를 통한 교육 내용과 주민의 참여라는 양적, 질적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작년의 교육 내용이 ‘주민참여예산제를 위해 다른 주민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면 올해에는 동별 커뮤니티, 생활 공동체 및 마을 만들기 등의 내용으로 심화시킬 것이다. 만수1동의 주민총회도 다른 동으로 확산시킬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렇게 하려면 보다 발빠르게 주민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모든 일정을 작년보다 한 달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야 좀 더 깊은 논의와 토론을 통해 정제된 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구의 ‘주민참여예산제’활동이 생활정치, 진보정치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로는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내가 끊임없이 아고라를 꿈꾸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동구 구민총회. 수천명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