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절반의 농민이 다른 절반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 가운데 대규모 기업농들은 비행기와 자동차의 연료로 만들기 위해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하니 소농이 전 세계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중의 절반은 바로 여성농민이다. 2011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농민은 30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6.3%에 해당한다. 이중 여성농민은 156만 명으로 전체 농민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농지가 사라진다. 2010년에도 여의도 면적의 22배에 달하는 농지가 사라졌다. 사람들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창고와도 같은 농지가 사라지면 현재 25%에 달하는 식량자급률을 지키기도 버겁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농민들이 희망을 갖고 농사짓기란 쉽지 않다. 한국 농업 자체가 위기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곧 모든 농민들의 생존과도 맞닿아 있다.
여성농민은 농사를 짓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조차 안정적이지 못한 조건 속에 있다. 또, 성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위기의 한국농업, 전 세계적 식량위기가 떠들썩한 요즘이다. 희망차게 농사의 시작을 알려야 하는 지금 여성농민들의 현실은 어떨까?

농사를 짓고 있어도 농업인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기본법 시행령」3조에서 농어업인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 1천 제곱미터 이상의 농지(「농어촌정비법」제98조에 따라 비농업인이 분양받거나 임대받은 농어촌 주택 등에 부속된 농지는 제외한다)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사람, 2. 농업경영을 통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인 사람, 3.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농민의 다수는 농지소유권과 통장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농업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농민들은 90일 이상 영농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를 요구하였다. 그 결과 2009년 영농종사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농림부 장관 고시로 농업인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하게 되었다.
- 30년 이상 농사를 지었는데도 농업경영이양직불제 대상이 될 수 없다니!
남편이 죽고 애들이 어리니까 문중에서 농지를 종증 어른 이름으로 한 겨, 내가 시집 가버릴까봐, 날 못 믿은 겨, 그것이 여적지 그렇게 되갔고 벌써 30년 이상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왔는데도, 땅이 내 이름이 아니니깐 경영이양직불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겨.”(오○○, 65세, 대전시)
경영이양직불제는 고령의 농업인이 쌀농사를 그만두고자 할 경우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농업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받을 수 없다. 농사를 지어왔어도 농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남편 이름으로 등록된 경우에 여성농민은 제외될 수 있다. 경영이양직불제도를 포함해 여성농민이 본인의 이름으로 농업인을 증명할 수 없으면 정부 정책 하에서 행해지는 각종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다.
- 온 동네가 다 농사지은 줄 아는데 세대원이라 농사경력을 인정할 수 없다니!
내가 다른 곳에서 농사지은 것도 아니고, 이 동네에서만 18년 이상 농사지어서 온 동네가 다 내가 농사지은 걸 아는데, 남자는 농지원부에 세대주에로 올라와 있으니까 되고, 저는 세대원이라 안 된다는 거예요. 법적으로 인정한 근거가 없대요. 이곳저곳 아무리 문의해도 아무도 속 시원히 답을 안 해요. 될 걸요 하고만 말지.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고 해주려고 안 해요… 우수 농가주부로 뽑혀서 상도 받고, 농사짓는 장면 촬영한 기사도 있고 한데, 농산물 판매한 영수증도 없고 하니깐 안 된대요.” (황○○, 53세, 충북 괴산군)
「직업인으로서 여성농업인의 법적 지위 보장방안, 농촌진흥청 김경미 박사」 중.
마을에 제대로 된 보육시설도 없으니…
지난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의 자료를 보면 농어촌 지역 1,417개 가운데 33%인 474개 읍면에 보육시설이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여성농민들이 이제 막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농사짓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마을에서 아이 키우는 걱정 없이 농사일도 하고, 마을 회의도 나가서 활동을 하고 싶어도 손발이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농민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려고 하면 한 쪽 편에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이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모습이 함께 한다. 여성들이 농촌에 들어와서 살고 싶어도 마땅한 시설조차 없으니 걱정이 앞서게 된다.
병을 앓고 있어도 치료 받으러 가려면 한 시간 넘게 걸려!
아이를 키우는 문제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걱정이다. 제대로 된 의료시설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에 비해 기계가 많이 개발되지 않은 밭농사를 많이 짓는 여성농민들은 하루 종일 구부려 앉아 일하다 보니 농부증에 더 많이 시달리고 있다.
농업을 직업으로 하는 농민들에게 주로 많이 나타나는 정신, 신체적 장애 증상군을 묶어 농부증이라 한다. 육체적 피로, 정신적 긴장, 영양부족, 감염이나 기생충, 한랭 장애 등이 몸에 축적되는 나타나는 것이다. 농부증은 어깨 결림, 요통, 손발 저림, 야간 빈뇨, 호흡곤란, 불면, 어지러움, 복부팽만감의 증상을 기준으로 진단한다. 실제로 2009년에 민주노동당 충남도당에서 지역의 농민 1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농민 50%가 농부증을 앓고 있어, 34%인 남성농민의 비해 훨씬 비율이 높았다.
사정이 이러한대 농촌 의료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1년 농림어업 총조사 결과 의료시설은 약국 및 보건소가 마을 내에 있는 경우가 10% 안팎이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경우에는 소요시간 20분 미만이 70% 내외였다. 반면 종합병원이 있는 마을은 1% 수준에 불과했고 다른 지역에 있는 경우 60.4%는 30분 이상 걸리는 것으로 나타나 접근성이 매우 낮았다. 나이가 들어 농사일을 계속 하고 싶어도 병은 더욱 심해지고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 나이가 들수록 농촌에서 지속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농민들의 몫
여성농민의 가사노동 시간은 평균 180분. 농번기 시기, 10시간에서 14시간을 농업노동시간을 더하면 하루에 쉴 수 있는 시간은 단 7시간. 이에 반해 UNDP <인간개발보고서>에서 농업인 부부의 생활시간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남성 농민의 가사노동시간(요리와 청소)이 7분에 불과하다. 농업노동에는 남녀가 함께 하지만 대부분의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다.
농사로는 생활하기 어려워,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 여성농민
94년, 농산물 시장을 대폭적으로 개방하게 한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됐다. 곧 이어 95년엔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여기에 더해 97년 IMF와 무차별적인 FTA의 추진으로 농산물 가격은 널뛰기하면서 농민들의 소득이 불안정하게 되었다. 2010년 농가부채는 한 농가당 평균 2,600만원이다. 농사를 짓고도 부채가 줄어들지는 않고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한참 일할 수 있는 젊은 여성농민을 지역의 인근 식당이나 학원 등과 같은 다른 일자리로 내몰고 있다. 자급적 노령여성농민은 농사에서 퇴출 또는 저임금 농업노동자로 전락시키고, 극단적으로는 지역에서 살 수 없게 된다. 후계여성농민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 나서기도 한다.
여성농민 전담부서도 없어지고, 정책 담당자도 없어!
지난 2001년 <여성농어업인육성법>이 제정되었다. 여성농업인과 여성어업인의 권익 보호, 지위 향상, 모성 보호, 보육여건 개선, 삶의 질 제고 및 전문인력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건강한 농어촌가정 구현과 농어업의 발전 및 농어촌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에 의해 시도 지자체까지 <여성농어업인육성기본계획>을 5년마다 여성농민에게 필요한 시책들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1998년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이 만들어지고 여성농민 정책에 대한 주업무를 소관하는 부서가 농촌사회여성팀으로 개편됐다. 현재는 그마저도 없어진 상황이다. 농어촌사회과 내에서 복지문제와 다문화가족 업무와 농촌여성에 대한 업무를 함께 병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도 지자체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농업소득, 농업경영, 복지인력, 교육복지 등의 담당자가 여성농민에 관한 정책 및 사업을 같이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예 전담자가 없는 지역도 있다.

우리도 농민이다!
여성농민의 법적, 사회적 권리 보장돼야
여성농민이 먹거리를 생산하는 역할에 맞게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많은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농업 체계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으로는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생산수단인 농지, 씨앗 등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농지에 대한 소유권은 가구 안에서 남성농민에 의해 주어지고, 씨앗은 종자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또한 농사를 짓기 위해서 어느 만큼의 면적에 어떠한 방식으로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지금 여성농민들은 4가지의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활동하고 있다. 여성농민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전담부서와 인력을 명시하는 여성농어업인육성법 개정, 모든 농업정책의 성별영향평가 실시, 국민연금 지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여성농민의 생산과 가공, 유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소규모 협업 여성농민 생산자 공동체도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농촌 지역의 성 평등 실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농촌 지역의 보육과 교육을 사회가 책임지고, 갈수록 증가하는 이주여성농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해야 한다.
여성농민이 행복한 농촌, 여성이 살고 싶은 농촌 만들기
어려운 현실,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여성농민들은 보다 나은 삶을 요구하는 한편 마을에서부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여성농민의 지위 향상을 법, 제도적인 차원에서 요구하기도 하지만 여성농민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미래의 모습을 앞서 만들어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활동이다. 한-미 FTA 반대나 WTO 협정을 폐기하라는 투쟁을 벌이는 한편 식량주권 실현을 국내에서 전개하고 있다.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여성농민이 참여하는 사업은 언니네텃밭과 토종씨앗 지키기 사업이 있다. 언니네텃밭은 여성농민이 소농 협업 방식으로 생산자 공동체가 도시의 소비자와 제철 먹거리를 직거래하는 사업이다. 토종씨앗 지키기는 오랜 기간 그 지역의 토양에 맞게 적응하여 정착된 씨앗을 찾아내고 보존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함께 참여하고 있는 여성농민들은 생활공간인 지역에 밀착하여 공동체를 구성함으로써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 동안 여성농민은 농업정책의 수립에서부터 시행에 있어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별도로 없었다. 그러나 언니네텃밭과 토종씨앗지키기 사업은 여성농민이 생산에서부터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결정권을 갖게 만들었다. 결정권을 갖는 것과 더불어 여성농민의 소득보장에도 기여한다. 통장을 만들고, 텃밭을 통해 거래되는 농산물에 대한 적정한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어 적게는 10만원에서 많은 경우 100만원에 이르는 월 소득을 얻게 된다. 토종씨앗 지키기 사업은 아직 소득보장까지는 못 미치지만 종 다양성을 지키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기업에게 넘어간 독점적인 소유권을 농민들이 다시 제 권리로 되찾아온다는 차원에서 벌이는 활동이다.
한국 농업농촌의 변화는 젊은 여성농민들에게는 행복하게 농사를 짓고 사는 삶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든 여성농민들은 농사를 지으며 쌓아온 지혜와 전통을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한국 농업농촌의 변화는 곧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여성농민은 새로운 사회 변화의 씨앗으로 인류의 생명을 책임지는 파수꾼으로 오늘도 내일도 먹거리를 생산하고 농업농촌을 지키는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