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발생한 세계적 변화들

[55호]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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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9:32:31

인류 역사에서 변화는 늘 있어왔다. 하지만 먼 훗날에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경우를 논외로 하면 실제 어떤 사건이 미래에 진정으로 전환적인 사건이 될지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매번 벌어지는 진기하거나 새로운 일을 매번 ‘혁명적 사건’이나 우주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하려들면, 실제로는 후일 역사에 진정으로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판별하기 더 어렵게만 만든다.

9.11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이 사건이 세계 역사를 다시 쓰게 될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후,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미국인들, 더 나아가 전세계 많은 사람들은 9?1 사건이 언제 있었냐는 듯, 예사롭게 여기며 살고 있다. 따라서 현재 벌어지는 사건이 여러가지 관계와 얽히면서 이후에는 전혀 다른 의미와 파장을 낳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세계 질서가 급격하게 전환중인 것은 분명 사실이다. ‘전후 세계’라는 말은 2차 대전 이후의 특정 질서를 나타낸 말인데, 이 말의 의미도 이제는 국제 정치학에서 서서히 퇴색하려 하는 중이니 말이다. 이 때문에 과거 미국에게 엄청난 특권을 부여했던 권위나 그로 인해 미국인들이 누렸던 각종 혜택들도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변화들을 모르는 체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더구나 이러한 생각들이 미국 정치권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려스럽다. 사실, 이런 측면이 미국 경제의 쇠퇴나 정치 시스템의 기능 불능상태나 부패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다. 어쩌면 이런 고의적인 실명 상태는 모든 제국의 황혼기에 공통적인 심리상태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 우리 앞에서 펼쳐진 변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경제적,군사적인 면이 종합된 총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대략적으로 네 가지 측면만을 주요하게 다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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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해진 기성 정치권을 대신해 현재 미국 정치의 활력은 오른쪽에선 티파티 운동, 왼쪽에선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군사력을 통한 미국 패권 확립 시도의 실패

9.11 테러가 발생하고 나서 부시 행정부는 아랍 지역을 자신의 뜻대로 재편하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부시가 추구했던 ‘테러와의 전쟁’의 최종목적이었다. 미국은 자신들이 지난 2차 대전과정에서 유럽과 일본에서 해냈던 일들을 아랍 지역에서 다시금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아랍 지역의 정치적 재편을 노린 것이다. 이러한 재편은 당연히 미국의 이해에 봉사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미국은 아랍 지역의 석유 자원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과 이를 방해하는 급진 이슬람주의를 박멸하려고 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입지를 아랍 지역에서 더욱 더 강화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노력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당연히 군사력이었다. 이러한 의도가 현실에서 실행되자마자 이러한 계획은 애초 예상했던 것처럼, 단기간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원대한’ 계획은 처음에는 이라크, 나중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좌절되기 시작했으며, 길고도 긴, 매우 잔학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전쟁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부시는 지난 2009년 1월 물러나기 전에 사실상 이러한 의제에 실현 가능성을 크게 두지 않았다. 물론 그는 그러면서도 사실상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자신들의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미국인들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사실, 이 실패로부터 모두가 깨달은 것은 미국이 아랍 지역에서 자신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기엔 미국의 군사력이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아랍 지역을 ‘해방’시키기는커녕, 길들이지도 못했다. 오바마가 부시에 이어 벌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쟁도 부시 정부 당시 내려진 이러한 준엄한 판결을 제 아무리 오바마라 해도 뒤집을 수는 없다는 점만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마바가 이런 저런 계획을 통해 제아무리 열심히 한들 다른 결과가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미국 극우파들이 이러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오바마 외교정책상의 지지부진한 틈을 타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같은 지역에서 어렵게 얻은 승리를 경솔하게 내던지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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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유지할 목적으로 틀어막았던 각종 봉인이 풀려버렸다.


대공황

미국 역사에서 경제적 거품이 붕괴했던 것은 사실상 되풀이 발생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8년에 발생한 공황은 그것이 내포한 심각성과 그 지속성, 여러 가지 개선책에 대한 기득권내의 심각한 저항이라는 면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발생한 각종 경기 침체와 확연히 다르다. 이 점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공황은 분명히 지난 1930년대 역사를 진동시킨 대공황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 때문에 이번의 공황은 잠시 과거처럼 잠시 일과성 사건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심대한 전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현재도 저성장의 일상화, 고실업율, 줄어드는 기회, 수입의 정체, 교육을 마쳐도 직장을 얻을 수 없는 청년들의 대량생산, 미국 중산층의 붕괴가 대중들 사이에 일련의 정치적 자각으로 이어져 현재 미국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불과 몇 년만에 미국 제도 정치권의 정치적 자신감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고, 미국 의회는 사람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불러일으킨 희망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실망과 냉소만이 남았다. 이러한 사태 전개가 미국의 극좌와 극우 지형에 남긴 결과 가운데 하나는 오랜 세월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미국 내의 급진주의에 불을 지핀 것이다. 소위 정치지형에서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기력해진 기성 정치권을 대신하여 현재 미국 정치의 활력은 오른쪽에선 티파티 운동, 왼쪽에선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이 두 운동은 출발한 지점이나 성격은 완전히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과거의 방식으로 지금의 난국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한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 정치사에서 곧잘 그래왔던 것처럼, 포퓰리즘이 등장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향후 어떤 정치가, 어떤 정치 스타일의 정당이 등장할지는 불확실해도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언제나 늘어나기만 할 물질적 부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과연 향후 등장할 미국의 새로운 정치인, 정치 정당이 이제는 결핍이 만성화된 상황을 성공적으로 다룰지는 미지수다.


아랍의 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랍의 격동은 서구 제국주의의 마지막 자취가 남아있는 지역을 휩쓸고 있다. 유럽인들은 유럽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케 한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현대 아랍의 정치 지형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의 힘이 약화하면서 미국이 처음에는 신중하게, 1980년대에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그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아랍 지역에 개입했다. 이로 인해서 이전에는 대체로 영국의 영향권이었던 이 지역을 미국이 지배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해당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활동이 점점 증가하는 것과 일치했다.

물론, 미국은 이 지역에서 과거 영국이 실행했던 공공연한 식민정치를 노골적으로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은 과거 유럽인들이 이 지역에서 펼쳤던 것들과 물질적인 측면에서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한 공통된 정책이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해를 끼칠 것으로 우려되는 사람이나 집단을 배제시키는 동시에 아랍 지역이 제공하는 것은 무엇이든 착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아랍 지역의 악랄한 권위주의 정권과 오랜 동맹을 구축했고, 각종 무기를 제공했으며, 이러저러한 안보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평범한 대중들의 복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에서 분명해진 것이 있다. 미국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유지할 목적으로 틀어막았던 각종 봉인이 풀려버렸다. 아랍 지역의 자기 결정권을 향한 거대한 운동이 그 원인이었다. 물론, 각성하여 이제 막 자기 결정권을 향한 거대한 운동을 시작한 이들 지역의 대중이 선택할 길이 때로는 현명할 수도, 그도 아니면, 아예 바보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이든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안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결과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은 이러한 큰 흐름을 되돌리고자 한 부질없는 희비극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더욱 더 중요한 점은 아랍 지역의 대중들의 투쟁적 진출이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에 맞선 전세계 대중들의 진출에 신호탄이 되었다는 점이다.  


생명줄을 찾아나선 포위된 유럽

돌이켜보면, 20세기 역사는 유럽이 상당한 정도로 만산창이가 된 후에 미국이 이를 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유럽이 부닥친 곤경들 가운데는 당연히 양차 대전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1917년과 1941년에 미국은 소위 평화와 동맹국을 위협하는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방대한 규모의 군대를 유럽에 보냈다. 차이가 있다면, 1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군은 바로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유럽에 머물며 서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군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붕괴된 유럽 경제를 재건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샬플랜인데, 그 때 이래로 곤경에 빠진 유럽 대륙을 구원할 힘을 가진 나라는 오직 미국뿐인 듯했다. 이제는 그것도 옛날 이야기다. 현재 유럽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졌다. 물론, 이번에는 미국이 군대를 보낼 필요까지는 없는 경제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미국이 유럽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미 유럽이 빠진 경제위기는 미국이 겪고 있는 것과 동일한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최근에는 유럽의 구원투수로 중국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중국이 유럽을 실제로 구원할 것인가 아닌가보다는, 이러한 발전 기저에 흐르는 기대의 변화다. 


이런 여러가지 상황변화로 봤을 때, 향후의 세계는 지난 1945년 이후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를 뿐 아니라, 미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위용을 누리던 때를 누군가 그대로 판박이하듯 재현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변화의 수면 아래에서는 현재의 체제에 불만을 가지면서 이것을 바꾸어보고자 애쓰는 전세계 대중들의 진출이 눈에 띄게 가시화되고 있다. 향후 만들어질 세계 질서와 패권은 바로 이들 몫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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